“조금 살만하다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 성공이에요”

1 month ago 9

제61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수상 배우 송인성

배우 송인성은 순진한 작품이 힘들다고 한다. 선악으로 단순하게 규정지어도 되는 연기는 숙제를 주지 않아서다. 간혹 연기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식으로 가볍게 치부되면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 상한다. 현실보다 더 복잡한 세계의 일상이라도 연기 같지않은 연기로 스며들 수 있다. 그러면서 모든 이에 공감을 얻는 아티스트로 남으려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배우 송인성은 순진한 작품이 힘들다고 한다. 선악으로 단순하게 규정지어도 되는 연기는 숙제를 주지 않아서다. 간혹 연기가 진입 장벽이 낮다는 식으로 가볍게 치부되면 마음이 아프고 자존심 상한다. 현실보다 더 복잡한 세계의 일상이라도 연기 같지않은 연기로 스며들 수 있다. 그러면서 모든 이에 공감을 얻는 아티스트로 남으려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성실한 호랑이송씨 가문에 ‘인성’이라는 이름. 한자로는 호랑이 ‘인’에 정성 ‘성’이라 ‘寅誠’으로 쓴다. ‘성’은 진실되고 성실하다는 의미도 있는데, 어릴 땐 이 이름이 그렇게 맘에 안 들어 부모에게 따지기도 했단다.

살다보니 이름에 감사하다. 이름대로 산다는데, 배우 송인성(48)은 정말 이름처럼 살아온 연기자다. 이름 듣고 단번에 얼굴이 떠오르는 유명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 한 번 맡은 배역을 물고 뜯는데는 ‘선수’로 연극계에선 소문났다.

연기의 ‘연’자도 모르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2기(95학번)로 입학했다. 연기 경력 30년 만에(데뷔작은 1999년 ‘이병복의 옷굿’) 지난달 영광스러운 상을 받았다. 제61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것이다. 역대 동아연극상에서는 신구(3,6,8회), 여운계(3, 7회), 박근형(5회), 김용림(9회), 김무생(15회), 김혜자(24회), 이혜영(25,32,49회), 윤석화(26회), 김학철(27회), 손숙(31회), 유인촌, 최민식(이상 34회) 등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남녀 연기상을 받아왔다.

“매년 이 상의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그럼 나는?’ 이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특별하게 뛰어나게 한 건 아닐 거예요. 어떤 장면에서 성실하게 연기를 했다고 보는데, 그 점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 비우면서 얻은 공감이번에 상을 받은 작품은 지난해 출연한 ‘간과 강’이다. 간은 우리 몸의 장기 중 하나인 간(liver)을 말한다. 간과 강을 어떤 관계로 설명하려 했는지 연출가의 의도를 읽기 어렵다는 평이 유난히 많았다.

송인성은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는 부부의 아내 역할을 연기했다. 인간 진화과정에서 발견되는 공허함, 담담한 일상에 쳐들어오는 종말의 표식을 연극은 담았다고 했다. 송인성이 맡은 배역은 여자 주인공 L이다. 그에게 연속해서 일어나는 사건은 종말과 공허함을 끌고 온다. 인간이 잊어버린 건 무엇인지, 퇴화된 본질적 감각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 보여줘야 했다. 그저 성실하게 연기했다. 관객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송인성은 “그동안 살면서 안으로 응축했던 것들을 전부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렇게 나를 비우니 ‘지금의 나를 살아보라’는 작가의 주문대로 집중이 됐다”고 했다.

연기한 캐릭터 L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어 좋았다. 고 3인 둘째 아들이 연극을 보고 “엄마가 있던 공간이 정신병원인거지?”라고 물었다. 아들에게 정말 좋은 해석이라고 칭찬해주면서 감동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관계자도 “긴 시간 동안 인물을 창조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공연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내 연기가 다양한 해석을 열어줬구나, 보람이 있었죠. 특히 여성 관객들은 제 캐릭터에 확실하게 공감해 주셨어요. ‘그래. 저럴 때는 나도 맥주 한 캔 따서 마셨지’라고요. ”
그는 해외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2000년대 초반 5년간 스웨덴에 산 적이 있다. 두 아들도 그곳에서 낳았다. 하지만 연극을 놓지 않았다. 스톡홀름국립연기대학에서 연기 공부를 했고, 현지 배우들과 연기하며 한국과는 다른 세계의 연기 구조를 배웠다. “이 역할은 못하겠다고 지레 겁 먹고 주저하는 태도가 스웨덴 다녀오고 없어졌어요. ‘그 까짓 거 한 번 해보자’고 연기를 대하게 됐죠.”

2011년 연극 ‘변태’에서 배역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하게 떨쳐냈고, 2018년 ‘하녀들-한국인 신체 사용법 탐구’에서는 상대 배우에 반응하는 스스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캐릭터를 완성해 제6회 서울연극인대상 연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간과 강’으로 동아연극상을 수상했다. “내가 인생을 허투루 살지는 않았구나 했어요. 배우 초창기에 이 상을 받았다면 ‘어깨 뽕’이 많이 올라갔겠죠? 저 혼자만의 ‘길’을 찾긴 어려웠을 거예요.”
그의 자신감은 집중력에서 나온다. “한 작품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대본 외에는 다른 책을 못 읽어요. 다른 사람하고 통화도 잘 안 해요. 어떻게 관객들에게 한 인물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에 필요한 에너지만 모으죠. 그게 힘들지만 너무 좋아요.”

>> 연기 같지 않은 연기의 선순환을 위해

객관적으로 ‘나’를 보려는 노력은 송인성만의 집중력과 성실함을 끊이지 않게 끌어내는 샘이다. 이런 마음의 다스림이 좋아 연기를 한 시라도 쉴 수가 없다.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객관적으로 ‘나’를 보려는 노력은 송인성만의 집중력과 성실함을 끊이지 않게 끌어내는 샘이다. 이런 마음의 다스림이 좋아 연기를 한 시라도 쉴 수가 없다.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배역에 푹 빠진 송인성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주란다. 원상 복귀해서 얻는 해방감이 꽤 중독성 있다고. 이러면서 다시 연기에 집중한다. “현실의 일들은 참 복잡하고, 이상하고, 양면적이고, 다양하잖아요. 앞으로의 연극은 지금의 현실을 더 깊이 파고 들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나중에는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설명이 되는 경지의 단계까지 가야할텐데 대단한 선배들도 아직은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게 동기부여가 돼요.”

앞으로 들어오는 배역 제의는 마다하지 않을 참이다. 송인성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다. 거침없이 자신의 연기를 양파껍질 까듯 까고 또 깔 거다. 몸을 더 움직여 연기로 몰아치는 것이 자신에 대한 배려라고 본다. 배려가 지속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인기가 있든 없든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몸을 움직여보자’다.

“만약 방에서 죽고 싶은 날이 있다고 쳐요. 그러면 밖에 나가 무작정 몸을 움직여보세요. ‘조금 살만하다’ 생각이 들기도 하는 순간, 성공이에요. 이렇게 변할 수 있는 나에게 더 집중해주는 것,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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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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