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민주주의 훼손” 우크라, 러 침공후 첫 反정부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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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감시기구 권한축소법안 서명
“전쟁중” 임기 만료에도 대선 거부
“EU 가입에도 악영향” 지적 나와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의 부패 감시 기구 권한을 약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전국 곳곳에서 이를 비판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키이우=AP 뉴시스

2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판하는 시민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의 부패 감시 기구 권한을 약화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전국 곳곳에서 이를 비판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키이우=AP 뉴시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처음으로 22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같은 날 고위 공직자에 대한 감시를 담당하는 기관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에 서명하자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2019년 5월 집권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5년 임기가 끝났다. 이후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줄곧 대선 실시를 거부하고 있어 야권의 불만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집권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그가 정권에 대한 부패 수사까지 마다하려는 모양새를 보이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물론 유럽연합(EU) 등도 우려를 표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르비우, 드니프로, 오데사 등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법안 서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부패 수사를 마다하려는 젤렌스키 정권의 행보가 권위주의 통치로 유명한 푸틴 정권과 다를 바 없다며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꼬집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국가반부패국(NABU)과 반부패특별검사청(SAPO) 등 두 기관을 검찰총장이 직접 관리감독하게 만드는 법안에 서명했다. 대통령실 주도로 추진됐고, 여당이 다수인 의회에서 통과됐다. 법안 제출, 의회 표결, 대통령 서명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전례 없는 빠른 속도로 법안이 처리됐다.

법안이 시행되면 고위 공직자 수사를 담당하는 두 기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지난달 검찰총장에 임명된 루슬란 크라우첸코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크라우첸코 총장의 승인 없이는 젤렌스키 정권의 주요 인사에 대한 수사 및 기소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야권 지도자인 올렉시 곤차렌코 하원의원은 “반부패 기관의 독립성이 사라졌다. ‘작은 독재 국가(우크라이나)’는 조만간 ‘큰 독재 국가(러시아)’에 삼켜질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고대하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EU는 회원국의 민주주의 향상, 사회 투명성 제고 등을 가입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욤 메르시에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두 기관은 우크라이나의 부패와 싸우기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마르타 코스 EU 확장담당 집행위원 또한 “우크라이나의 법치주의 후퇴를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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