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도뮤지엄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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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톤 콘크리트 작품부터 반짝이는 비즈 철조망까지

모나 하툼

모나 하툼
실에 꿰어 주렁주렁 매단 곶감처럼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전시장 천정에 매달려 있다. 가까이서 보면 콘크리트를 매달고 있는 건 단단한 고리로 연결된 철근. 작품의 전체 무게는 1.6t에 이른다. 영국 미술가 모나 하툼이 2019년 처음 전시했던 ‘리메인즈 투 비 신(Remains to be Seen)’이다.

하툼은 낙후한 도시의 버려지거나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건물을 떠받쳤던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가 가볍게 떠 있는 듯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견고할 것이라 믿었던 문명이 한없이 연약할 수도 있다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하툼을 비롯해 국내외 작가 13인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이 제주 서귀포시 포도뮤지엄에서 9일 개막했다.

하툼의 설치 작품 뒤편으로는 가시가 뾰족한 철조망이 서 있다.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들이 백인 거주 지역으로 오지 못하도록 세워졌던 이 철조망을 미국 작가 라이자 루는 남아공 인종차별 피해자인 줄루족 여성들과 함께 수백만 개의 반짝이는 비즈로 뒤덮었다.

전시는 이처럼 폭력, 분열,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문을 연다. 첫 전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2021년 트위터에 게시했던 글을 금속판에 새긴 제니 홀저의 설치 작품 ‘저주받은’(Cursed) 등으로 이뤄졌다.

재일교포 3세 수미 가나자와 작가가 신문지를 10B 연필로 까맣게 칠해 만든 작품 ‘신문지 위의 드로잉’. 가나자와 작가 제공

재일교포 3세 수미 가나자와 작가가 신문지를 10B 연필로 까맣게 칠해 만든 작품 ‘신문지 위의 드로잉’. 가나자와 작가 제공
이어지는 두 번째 전시장에서는 ‘시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연필로 까맣게 칠한 신문 수백 장을 커튼처럼 이어 붙인 재일교포 3세 작가 수미 가나자와의 ‘신문지 위 드로잉’, 네덜란드 작가인 마르텐 바스가 손수 12시간 동안 시곗바늘을 지우고 그리는 모습을 촬영한 ‘리얼 타임 XL-아티스트 클락’, 이완 작가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전시했던 작품 ‘고유시’ 등이 펼쳐진다.

사라 제
미국 작가 사라 제의 영상 설치 작품 ‘슬리퍼스’는 크고 작은 종이 조각들을 가느다란 실로 엮어 여러 크기의 스크린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효과를 만들었다. 종이 위엔 잠든 사람의 얼굴, 도시의 불빛, 나뭇잎 등 서정적인 영상이 보인다. 가장자리가 찢어진 종이 조각 뒤로 비치는 잔상과 바닥에 비치는 영상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이번 기획전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끊임없이 갈등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1, 2전시장에서 이어지는 테마 공간 2개는 이런 문제를 한발짝 떨어져 봄으로써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테마 공간 ‘유리 코스모스’는 전시장에 설치된 센서에 관객이 숨을 불어넣으면 유리 전구 수백 개에 차례로 불이 밝혀진다. 또다른 공간인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거울로 둘러싸인 반원형 공간의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통해 자연과 우주에 관한 영상을 상영한다. 무한히 확장되는 우주 앞에 먼지처럼 작지만 연결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내년 8월 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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