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닛케이·환구시보
한중일CEO 287명 설문조사
中 "기후변화" 日 "인플레이션"
올해 경영 악화 요인으로 꼽아
한국 기업가들 불안감 가장 커
전세계적 지정학 공포도 여전
세금 감면·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의 적극적 대책 마련 요구
◆ 한중일 CEO 설문조사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 유럽과 중동에서 계속되는 전쟁, 일상의 규칙을 바꾸는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 한층 거세진 친환경 흐름 등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 환경에 놓인 한·중·일 3개국의 최고경영자(CEO)는 올해를 녹록지 않은 해로 보고 있다. 어려운 경영 환경의 요인으로 한국 경영자는 '정치 위험'을 꼽았고, 일본은 '인플레이션', 중국은 '기후변화'와 이에 따라 빈번해진 '자연재해'를 거론했다. 여기에 공통적으로 미·중 대립에 따른 불안정한 환경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고충으로 털어놓았다. 매일경제가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 환구시보와 함께 3개국 CEO 2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올해 경영 환경에 대한 불안감은 한국 쪽 경영자가 두드러지게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달 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언과 이어진 탄핵 사태로 국내 정치가 극심한 혼란을 겪는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올해 경영 환경과 관련한 질문에 '좋아질 것'이라고 본 일·중 경영자가 각각 36%에 달했지만, 한국 경영자는 절반이 넘는 61%가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상무)은 "대외 문제 못지않게 국내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경영자가 많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과 같은 대외 리스크에 대한 해법을 찾는 와중에 국내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고 분석했다.
올해 경영 환경 악화 요인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한국 경영자는 51.4%가 '정치 위험', 38.9%가 '미·중 대립'을 꼽았다. 일본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1순위(53.3%)로 거론했으며, '주요국의 금리 정책과 외환 시장의 불안한 움직임'도 33.3%의 경영자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심승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는 "일본은 달러당 엔화값이 150엔대 후반까지 내리면서 수입 물가가 오르고 이것이 전반적인 일본 내 물가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며 "일본은행이 적극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설 상황도 아니어서 이러한 고착 상태가 장기화될 우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37.5%의 경영자가 '기후변화 심화와 이로 인한 각종 자연재해'를 최대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 정부는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해로 상반기에만 17조원의 피해를 봤다고 발표했다. 지난 7일에는 티베트에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해 사상자 수십 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하마스 충돌 같은 세계적인 무력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중·일 경영자는 올해도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할 것으로 분석했다.
지정학적 위험이 '악화될 것'이라는 응답은 한일 경영자 각각 44.9%, 49.2%에 달했다. 중국 경영자는 19%가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으며 '현재 상태 유지'는 64%로, 이를 고려할 때 불안감이 여전한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전 세계적 물가 인상의 배경에 지정학적 위험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한·중·일 경영자의 물가 불안도 이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물가 전망으로 일본 경영자 중 87.9%가 '최대 3% 오를 것'이라고 응답했다. 한국 경영자 69.5%도 같은 답을 했다. 심지어 '3% 이상 오를 것'이라는 경영자도 12.7%에 달했다. 반면 경기 침체로 디플레이션 걱정까지 하는 중국은 '올해 물가가 현재와 큰 변화 없다'고 보는 경영자가 58%에 달했다.
기업 경영을 하는 데 있어서 올해 자국 경제의 걸림돌에 대한 질문(복수 응답)에 중국 경영자는 1순위로 '주요 국가의 금융정책 변화'를 꼽았다. 일본은 52.2%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 감소'를 거론했다. 유효구인배율(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대비 일자리 수)이 1을 넘는 일본에서는 요즘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55.1%의 경영자가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성장률 저하'를 거론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잠재성장률은 2000년부터 계속 하락하고 있고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에도 못 미치는 침체 국면은 2020년 이후 지속되는 추세"라며 "새로운 성장엔진을 발굴하지 못하고 현재의 구조적 침체가 지속된다면 현재 2%대인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에 0%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불안감을 바탕으로 한·중·일 CEO는 각국 정부에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주문했다.
중국 경영자 중 23%는 자영업자·중소기업 등 최근 중국 내 경기 둔화로 타격이 큰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20%의 경영자는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의 경기 활성화 대책을 요청하기도 했다.
일본은 43.5%의 경영자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경영자 58.5%가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한편 올해 말 환율 전망과 관련해 한국 경영자는 달러당 원화값이 평균 1391원, 일본 경영자는 달러당 엔화값이 144.9엔, 중국은 달러당 위안화값이 7.66위안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경영인으로 한국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일본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일본명 손 마사요시), 중국은 레이쥔 샤오미 회장을 꼽았다. 주목할 기업으로 한국은 삼성전자, 일본은 소니, 중국은 샤오미가 거론됐다.
[특별취재팀=도쿄 이승훈 특파원 /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 서울 이재철 기자 / 신윤재 기자 / 최현재 기자 / 성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