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은 지난 3월 말 경북 의성·청송·영양의 산불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그다음 날 역시 산불 피해를 본 경남 산청과 하동으로 이동해 “조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치지 않는 현장 방문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지난해 3월 취임 후 250여 개 농·축협과 50여 농가를 찾았을 정도로 왕성하게 현장을 누비고 있다.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씨름판이 아니라 농업계의 ‘천하장사’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강 회장은 매일 퇴근 후 한 시간씩 걸으면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취임 1년을 넘긴 강 회장을 지난 9일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사에서 만나 농협이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제 ‘돈 버는 농업’이 돼야 한다”며 “혁신으로 농업 소득 3000만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1100만원(2023년 기준)인 농업 소득을 세 배가량 늘리겠다는 것이다.
▷농업 소득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렇습니다. 농가 소득은 연간 5000만원 정도 되지만, 여기에는 농업 소득 외 다른 소득이 포함돼 있습니다. 농가 상당수가 부업을 하고, 정부 지원금도 받고 있으니까요. 순수하게 농업으로 벌어들이는 것은 1100만원 정도입니다.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농업인이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반대인 이유입니다.”
▷그래서 귀농 열풍이 시들해졌나요.
“귀농 인구는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과 2021년 늘었다가 그 후 매년 감소했습니다. 근본 원인은 농업으로 수익이 나지 않는 점입니다. 농사를 지어도 빚만 쌓이는 현실에선 누구도 농촌에 정착하지 못하죠. 정부 예산과 정책 지원보다 중요한 게 농업 수익성 확보입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스마트팜 보급에 나선 겁니까.
“맞습니다. 2021년부터 스마트팜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수십억원 드는 고가 스마트팜보다 1000만원대 보급형이 효율적이고 실용적입니다. 하우스 등 기존 시설에 쉽게 적용 가능하고, 영농 편의성과 생산성을 높여줍니다. 스마트 농업 기술 도입으로 수출도 늘릴 계획입니다.”
▷K푸드 수출 상황은 어떤가요.
“지난해 농식품 전체 수출액은 2억8900만달러로 전년 대비 7%가량 줄었지만 딸기, 쌀 등 주요 품목은 오히려 성장세입니다. 특히 쌀은 올해 일본에 22t 수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유자차·홍삼 등 가공식품도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요.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마트 대상 홍보와 판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농촌 일손 부족 문제는 어떻습니까.
“올봄 농번기에는 연인원 439만 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현재로선 외국인 노동자 없이 어렵습니다. 농협은 정부와 함께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을 통해 하루 단위 외국인 인력 매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는 지금 농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최근 영남의 산불 피해가 컸습니다.
“마을 골목골목을 걸으며 전쟁터 같은 피해 현장을 보니 마음이 무겁더군요. 농업인들이 하루빨리 영농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무이자 재해자금 2000억원과 긴급 구호물품을 지원하고, 임직원 성금을 포함한 30억원을 기부했습니다.”
▷쌀값 보전을 위한 양곡관리법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협은 쌀뿐만 아니라 과일, 채소, 축산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룹니다. 특정 품목 가격 정책에 단일한 입장을 내긴 어렵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쌀 수급 안정 제도를 마련한다면, 농협은 ‘아침밥 먹기 운동’ 등 소비 촉진 활동을 통해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직 공식적인 요구는 없지만,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소고기 수입 확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30개월령 이상 소의 수입은 식량 주권과 국민 건강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합니다.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량은 21만5000t으로 전체 수입의 48%를 차지했습니다. 국내 한우 생산량(32만1000t)과 비교하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농협중앙회 본사의 지방 이전 가능성도 언급되는데요.
“전남 전북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지만, 공식 검토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회장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1만1100명의 농협 조합장, 202만 명의 조합원, 12만 명의 직원이 함께 뜻을 모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농협 금융사고가 잦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작년 한 해 10억원 이상 사고가 네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도덕적 해이와 내부통제 부재가 원인입니다. 소송 등 법적 절차의 장기화로 사고금액 회수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어요. 사고 근절을 위해 전산감사 일원화와 사고 추적 자동화, 위험 징후 탐지 모델을 새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조합의 상임감사 도입 요건도 대폭 낮춰(자산 1조원→8000억원) 내부통제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금융 자회사의 역할도 궁금합니다.
“농협금융지주는 은행 금융지주와 설립 목적, 수익 배분 구조가 다릅니다. 농협법에 따라 금융사업에서 발생한 수익 일부를 농업 지원에 사용 중입니다. 지난해 농업지원사업비, 배당금 등으로 1조3111억원을 농촌에 환원했습니다. 전년 대비 12%가량 증가한 것입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축협·낙협 연합조직…2012년 신용·경제부문 분리
농협의 시초는 1958년 설립된 농업협동조합과 농업은행이다. 두 기관이 1961년 통합돼 금융 기능까지 갖춘 농협이 탄생했다. 이후 ‘도시에 은행이 있다면 시골에는 농협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촌 지역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금융기관이 됐다.
농협은 2000년 7월 축산업협동조합 및 인삼협동조합과 합병하면서 축산업 등도 겸하고 있다. 다만 지역 단위에서는 농협, 축협, 낙협 등으로 아직 업무 영역을 나누고 있다. 2012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과 경제부문을 분리해 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 등 자회사를 만들었다. 금융지주 아래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 손자회사를 두고 있다. 농협은 2023년 매출 기준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내 농업 부문 1위다. 농협 회장은 ICA 분과 기구인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회장직도 맡고 있다
강호동 회장은…경남 율곡 조합장 5선
딸기품종 국산화 주도…농가 수익확대 이끌어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987년 경남 합천 율곡농협 채용에 합격해 농협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6년 이 농협 조합장에 처음 당선된 후 내리 5선에 성공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농협중앙회 이사도 맡았다. 강 회장은 지난해 3월 제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20년 만에 경남에서 나온 회장이었다. 농협중앙회장은 4년 단임제에 비상근직이지만 농협에서 실질적인 권한과 위상을 가진다.
강 회장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율곡농협조합장(2006~2024년) 시절 한국딸기생산자대표조직 회장(2010~2024년)을 겸직하며 변화와 성과를 이끌었다. 우선 국내 딸기 시장을 일본 품종에서 국산 품종 중심으로 전환했다. 현재 국내 생산량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는 ‘설향’ 품종의 전국 확대를 주도했다. 해외 로열티를 줄이면서 품종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딸기를 공동 생산·판매·정산하는 공동계산제를 도입해 유통 유명성과 가격 안정성을 높였다. 고품질을 확보하면서 소비자 신뢰도 높아졌다. 아이스딸기, 딸기퓨레 등 가공식품 개발도 성과다. 딸기를 단순한 생과일에서 가공 및 수출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키웠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강 회장은 2017년 대한민국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강 회장은 딸기 외에도 애플수박, 고구마, 야콘 등 신소득작물 발굴과 계약재배 확대로 농가 소득을 실질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전국 최초로 농협 직영 생작물 사업을 도입했다. 농협이 먼저 농사를 지어보고 수익성을 검증한 뒤 농가에 권장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 약력
△1963년 경남 합천 출생
△1979년 합천고 졸업
△2009년 대구미래대 세무회계학과 졸업
△2006~2024년 율곡농협조합장
△2012~2015년 농민신문사 이사
△2016~2020년 농협중앙회 이사
△2010~2024년 한국딸기생산자대표조직회장
△2024년~현재 국제협동조합농업기구(ICAO) 회장
△2024년 3월~현재 농협중앙회 회장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