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관 칼럼]본류와 역류의 소용돌이, 중도는 어디로

1 week ago 8

6·3대선의 本流는 ‘저질러진 독재’에 대한 심판
‘올 수도 있는 독재’에 대한 불안감이 逆流 형성
진영 충돌 속에 굵직한 국가적 의제 논의는 뒷전
고뇌하는 중도, ‘누가 통합형인지’ 보고 있어

정용관 논설실장

정용관 논설실장
6·3 대선이 임박했다. 그사이 또 뭔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김문수-이준석 후보의 단일화 여부인 것 같다. 사전투표 전날인 28일쯤 가부간 결판이 날 것이다. 10% 문턱을 살짝 넘은 이 후보 지지율이 좀 더 올라 15%에 근접하면 이 후보가 칼자루를 쥐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3석 다윗이 108석 골리앗 어깨에 올라타는 식의 역발상 단일화는 냉정하게 말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후보가 최대한 몸값을 키워 ‘통 큰 베팅’에 나서는 시나리오는 어떨까. 이 후보가 최종 득표율 15%를 넘긴다고 해도 당장 손에 남는 건 수십억 원의 선거비용 보전뿐이고, 3석 정당의 한계는 너무도 명확하다는 점에서다. 견제용 의도가 다분하겠지만 민주당 쪽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존재감과 잠재력을 밑천으로 ‘큰 집’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이 후보로선 자신의 지지층만 형해화한 채 안철수의 토사구팽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불확실한 길이니 고심이 깊을 듯하다.

단일화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는 이번 대선의 큰 흐름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왜 치러지게 됐나. 12·3 불법계엄과 헌법재판소의 8 대 0 파면 결정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선거다. 그러니 이번 대선을 죽 관통해 온 본류(本流)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국민적 평가일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 융기했고, 그 융기된 지형의 맨 꼭대기에 이재명 후보가 올라탄 셈이다. 너무 충격적인 뒤틀림 끝에 단박에 솟아오른 언덕은 지금도 단단하다. 이 후보가 그간 압도적 1위를 달려온 이유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만들어 헌납한 것이니 그 또한 이 후보의 운(運)이다.

그런데 선거가 본격화하며 역류(逆流)도 만만찮게 일고 있다. 이재명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보수 진영과 중도 일각의 두려움이다. 90%에 육박한 지지율로 선출된 대선 후보로 역대 민주당 계열 정치인 중 가장 강력한 당 장악력을 보여 온 그가 입법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손에 넣고, 국민의 뜻을 내세워 사법 권력까지 통제하며 독주하면 누가 견제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결국 작금의 대선 지형은 이미 ‘저질러진 독재’에 대한 철저한 단죄냐, 앞으로 ‘올 수도 있는 독재’에 대한 견제냐의 본류와 역류가 뒤엉킨 형국으로 보인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하지만 아직 그 경륜과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만 40세 정치인도 틈새를 비집고 역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본류와 역류가 부딪히면 와류(渦流), 즉 소용돌이가 일게 된다. 본류는 강력하고 두 갈래로 나뉜 역류는 힘에 부친다. 성격이 다른 두 역류가 힘을 합칠지, 우여곡절 끝에 합쳐봤자 본류에 삼켜지고 말지, 본류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지 등이 앞으로 남은 며칠 동안 벌어질 수도 있는 일들이다.

여기서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은 또 다른 잣대가 있다는 점이다. 누가 위기의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인물’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요즘 “훗날 12·3 계엄이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나락으로 빠져드는 시발점으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심각하게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언제는 위기 아닌 적이 있었냐고 할 수 있지만 이전의 위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새삼 열거할 필요도 없지만, 문제는 0%대로 진입할지도 모른다는 잠재 성장률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 아파트 가격 차이가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하는 서울 부동산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등 굵직한 국가 의제에 대한 변별력은 보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국익 공방이나 잡화점식 각론만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유권자 분포는 왼쪽과 오른쪽에 큰 봉우리가 있고, 그 중간에도 봉우리가 있는 ‘삼봉형’이다. 결국 가운데 봉우리에 속한 유권자들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의 싸움이다. 계엄 단죄 여론이 여전히 높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좀 희석된 듯하다. ‘단죄론’ ‘가짜론’은 지지층 결집엔 도움이 될지언정 ‘플러스알파’로 이어지진 않는다. “누구를 뽑을지 모르겠다” 등의 얘기가 적지 않게 들려오지만, 이젠 누가 더 절제할 줄 알고 덜 오만하고 통합형 인물인지를 판별하는 시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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