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전력 수급 계획을 믿고 18조원을 투자해 발전소를 세운 민간 석탄발전업계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송전망이 부족해 20%의 낮은 가동률이 지속되는 데다 정부가 각종 비용 보전에 인색해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소에 설비를 껐다 켰다 하는 출력제어를 수시로 요청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발전 설비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했지만 정부는 필수 예비품 구매비 등을 원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력망 경고등
27일 업계에 따르면 GS동해전력과 고성그린파워,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등 민간 석탄발전 4개사는 전력당국으로부터 예비품 구매 비용을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 이 네 곳이 지금까지 받지 못한 금액은 1535억원에 달한다. 네 곳의 실적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강릉에코파워는 지난해 14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예비품은 발전소 고장에 대비해 반드시 쌓아둬야 하는 자산이다. 자동차 스페어타이어와 같은 개념이다. 국내 전력시장은 발전소가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 투자비와 운영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해 정산해주는 ‘총괄원가보상제’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당국은 발전공기업에 대해선 예비품 구매비를 재투자비(자본적 지출)로 인정하고 있다. 먼저 돈을 써서 부품을 교체하면 전력판매대금에 비용을 반영해 장기간에 걸쳐 회수하는 구조다.
반면 민간 발전사는 이 첫 단계인 ‘재투자비 인정’ 자체가 막혀 있다. 비용을 써도 전력판매대금에 반영되지 않는다. 같은 설비를 운영하는데 정산 기준이 다른 셈이다. 현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발전공기업이 지분을 투자한 일부 민간 석탄발전소는 공기업 발전소 설비와 100% 동일한 매뉴얼로 운영하고 있다”며 “공기업 관계자들도 ‘같은 필수 부품을 쓰는데 왜 정산 기준이 다른지 의아하다’고 말할 정도로 당국의 잣대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공기업과 차별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국내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져 화력발전소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태양광·풍력의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발전기를 수시로 끄고 켜야 한다. 이 때문에 설비 피로도가 한계에 다다랐다. 화력발전 설비의 고장 정지 횟수는 2021년 이후 매년 160건 안팎을 기록했다.
이에 필수 예비품 수요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석탄발전은 부품 조달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핵심 부품은 해외에서 들여와야 해 수개월씩 걸리는 때가 많다. 예비품을 미리 확보하지 못하면 발전소가 장기간 멈출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예비품 비용을 ‘전력망 보험’에 비유한다.
이런데도 전력거래소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비용 반영을 미루고 있다. 거래소 측은 특히 “발전공기업은 모회사인 한국전력과 적자를 분담하는 특수 구조인 데 비해 민간은 고정 수익률을 보장받는 만큼 정산 기준이 다른 것은 차별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공기업은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채를 책임지겠지만 민간은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며 “표준 투자비를 조속히 확정해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을 믿고 투자한 민간 사업자의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용 보전 공백이 장기화하면 전력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려면 화력발전의 안정적 운영이 필수”라며 “예비품 확보가 지연되면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 전체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1 week ago
5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