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줄루’(bravo zulu·임무를 잘 수행했다).
미국 해군 예산과 정책을 책임지는 존 펠런 해군성 장관은 지난달 30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을 둘러본 뒤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브라보 줄루는 동료에게 최고의 칭찬 메시지를 전할 때 사용하는 해군 은어다. 펠런 장관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만난 최신식 건조 시설과 유지·보수·정비(MRO) 시설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날 4시간에 걸쳐 조선소 야드와 함정 건조 현장 등을 꼼꼼히 둘러본 펠런 장관이 한국 조선소의 역량에 높은 점수를 준 만큼 향후 군함 및 정비물량 수주 가능성이 한층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수 역량 갖춘 韓과 협력해야”
1일 업계에 따르면 펠런 장관은 전날 울산 HD현대중공업의 독(dock·선박 건조장)을 찾는 것으로 조선소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정기 검사를 위해 조선소에 들어온 정조대왕함의 갑판과 전투지휘실, 기동부대 지휘실 등을 세심히 살폈다. 건조 중인 이지스 구축함 다산정약용함 등도 둘러봤다.
이후 30분 동안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함정 건조에 대한 펠런 장관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1시간30분으로 예정됐던 울산조선소 방문 시간이 2시간으로 늘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펠런 장관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조선소와 협력하면 제때 선박 유지·보수가 가능해져 미 해군 함정이 최고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 수석부회장은 “한국과 미국은 혈맹으로 맺어진 친구이자 최고의 동맹국”이라며 “HD현대의 뛰어난 기술력과 선박 건조 능력으로 미국 조선업 재건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화답했다. HD현대는 미국 최대 방위산업 조선사 헌팅턴잉걸스와 협력해 현지에서 미 해군 함정을 함께 건조할 계획이다.
◇자동화 공정에 관심
펠런 장관은 이후 헬기를 타고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로 이동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MRO 작업을 하고 있는 미 해군 급유함 유콘함과 잠수함 건조 구역 등 주요 생산 현장을 둘러봤다. 그는 선박 블록 조립 공장의 자동화 공정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펠런 장관은 “미 해군과 한국 조선업의 관계는 선박 정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을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데 초석이 될 것”이라며 “양국 동맹을 더욱 강화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은 미 해군 수요에 맞춰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조 체계를 완비했다”며 “미국 내 여러 조선소를 확보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북미 시장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미국 진출을 위해 지난해 12월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했다. 또 미국 앨라배마와 캘리포니아 등지에 조선 시설을 보유한 호주 방산업체 오스탈 인수에도 나섰다.
펠런 장관의 방한으로 한국 조선사들의 미 해군 MRO와 군함 수주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날 함정 건조와 MRO 협력 확대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방한은 한국 조선소의 생산 역량을 미 해군 수장이 직접 확인하는 성격이 짙었다”며 “구체적 협력 방안은 조만간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