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 과거의 보존과 재현에 그친다면, 한옥의 미래는 없다[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3 weeks ago 5

韓전통건축 답사, 재해석해 지은 스위스대사관이 불러일으킨 의문
‘모던 한옥’ 한옥이라 할 수 있나… 전통은 과거부터 이어져 온 지금
보편성 토대로 전통 확장한다면, 한옥의 가치 더 깊고 견고해질 것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자리 잡은 스위스대사관의 목조로 지어진 외관. 김대균 대표 제공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자리 잡은 스위스대사관의 목조로 지어진 외관. 김대균 대표 제공
《‘모던한 한옥’이란 무엇인가

얼마 전 주한 스위스대사관의 초대를 받아 대사관 건축 투어를 했다. 이 건물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사무소 ‘부르크하르트 파트너’는 특이하게도 이 건물에 스위스의 정체성을 담지 않고 한국의 여러 전통 건축들을 답사한 뒤 이를 바탕으로 대사관을 설계했다. 2018년 준공 이후 스위스대사관은 ‘스위스 한옥’이라는 정다운 애칭을 가지게 됐고, 한국과 스위스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문화 교류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투어 도중 한 분이 가이드를 담당한 대사관 직원에게 “모던한 한옥으로 불리는 이유를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한옥을 닮았다고 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그 직원은 전통 건축과 유사하게 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물 계획과 처마, 목조로 지어진 외관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더해지자 의문이 증폭됐다. 중정이나 뜰(courtyard) 등 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은 다른 나라에도 흔히 있고, 세계적으로 목조건축에서 처마가 없는 건물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적’이라고 말한 부분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요소라 한국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창호지를 바른 한옥의 문을 닮은 창(위 사진)과 대들보를 연상케 하는 천장 등 전통 한옥의 여러 요소를 현 시대의 의미를 담아 재구성했다. 김대균 대표 제공

창호지를 바른 한옥의 문을 닮은 창(위 사진)과 대들보를 연상케 하는 천장 등 전통 한옥의 여러 요소를 현 시대의 의미를 담아 재구성했다. 김대균 대표 제공
외형적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한옥에 대해서는 전통을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나 현재의 관점으로 지어진 ‘모던한 한옥’에 대해 전통의 틀로 이야기하는 것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러면 전통은 단순히 과거의 보존과 재현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이 가능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활 문화와 집 짓는 방식이 바뀐 오늘날에 남아 있는 한옥이 극소수일 뿐 아니라 이를 만드는 기술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통의 보존과 재현에 갇힌다면 한옥의 미래는 없다. 한옥의 소멸은 단순히 건물의 소멸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의미하는 생활 문화 근간의 소멸이기도 하다.

‘전통’이라는 단어에서 ‘전(傳)’은 ‘전하다’라는 뜻으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을 의미한다. ‘통(統)’은 ‘합치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통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합치된 것을 지금이라는 시간의 바탕 위에서 연속적인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전통은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져 온 지금에 방점이 있다. 즉, 한옥을 지금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건축은 당장 전통에 합치된 것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역사라는 거시적인 시간 축에서 보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태도 자체가 전통의 시작점이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도는 전통을 건강하게 만들며 문화의 근간이 된다.

외형에서 벗어나 한옥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면 ‘한(韓)’은 ‘하나’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가득, 한아름과 같이 ‘전체’라는 의미도 있다. 또 한가운데, 한낮처럼 ‘정점’을 뜻하기도 한다. 하나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고, 모든 것이 하나인 사상은 고대부터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넓게 공유됐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옥은 시작이면서 전체를 품는 생명철학을 담은 집이다. 한옥이 품을 수 있는 범주는 선명하면서 동시에 넓다.

근대의 철학, 회화, 문학, 사회 등은 모든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바탕으로 전통을 해체하고 새롭게 사회를 재구성했다. ‘모던’은 얽혀 있는 과거를 해체하고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인간 중심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한옥에 적용해 보면 모던 한옥은 오랜 시간 합치의 축적인 한옥을 생활방식, 환경, 지역, 경관, 공간, 시간, 재료, 시공 방식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현 시대의 의미를 반영해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모던한 사건과 디자인은 사실 기존의 사회와 문화를 발판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해 왔다. 하지만 모던의 부작용으로 세계가 획일화돼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지역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문화의 다양성은 지역의 자부심을 형성하고 공동체의 토대를 이루며 동시에 지구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스위스대사관은 스위스의 문화를 체득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 건축물들을 보고, 자신들이 이해한 한국의 전통을 토대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즉, 전통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집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유럽인과 한국인의 교집합으로 탄생한 건축이라는 점이다. 이것에는 보편성이 담겨 있다. 보편성은 서로를 이해하고 문화를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다. 대사관 직원이 말한 마당을 중심으로 한 건축 구성, 목조건축과 처마의 형식 등은 보편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을 바탕으로 한 관점은 오히려 문화 콤플렉스를 없애고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의 바탕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옥에 담긴 오늘날의 가치는 우리 문화를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김대균 건축가·착착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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