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못받아 계약금 5000만원 날렸다”…집주인에게 받을 수 있나[집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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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반환이 지연되면서 새 집 계약이 무산되는 등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전세보증금 반환이 지연되면서 새 집 계약이 무산되는 등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전세 계약 만료를 한 달 앞둔 직장인 A 씨는 마음에 드는 새 집을 찾아 계약금 5000만 원을 걸었다. 잔금일은 기존 전세 계약 종료일로부터 사흘 뒤였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돌려받을 전세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계약 만료일이 다가오자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며 보증금 반환을 미루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수차례 연락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잔금 지급일이 지나면서 새 집 계약은 해제됐고, A 씨는 계약금 5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A 씨는 “집주인이 보증금만 제때 돌려줬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손해인데 왜 내가 떠안아야 하느냐”며 법적 대응을 고민했다.

그렇다면 전세보증금 반환 지연으로 새 집 계약금까지 날린 경우, 그 손해도 집주인에게 청구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청구는 가능하다. 다만 실제로 배상이 인정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법원은 이를 일반적인 손해가 아닌 ‘특별손해’로 보기 때문에, 단순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부동산 전문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늦게 반환할 경우 임차인이 새 집 계약금까지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만 특별손해 배상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왜 계약금 손실은 자동으로 배상되지 않을까

민법은 손해배상 범위를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로 구분한다.

통상손해는 채무불이행이 발생했을 때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손해를 말한다. 전세보증금 반환이 지연됐다면 지연이자나 지연손해금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새 집 계약금을 잃는 상황은 모든 임차인에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임차인이 이미 다른 집을 계약했고, 보증금을 받지 못해 잔금을 치르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추가 손해다. 법원은 이를 특별손해로 본다.

문제는 특별손해의 경우 임대인이 그 사정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점이다.

즉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이 늦어지면 임차인이 새 집 계약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정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 법원 “계약금 5000만 원도 배상하라”

실제로 법원은 임대인이 이러한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판단한 경우 계약금 손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42708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임차인은 임대인 측에 여러 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미 다음 집 계약을 해둔 상태라 만기에 반드시 이사해야 한다”고 알렸다. 이에 임대인 측은 “날짜를 맞춰주겠다”,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대화 내용을 근거로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경우 임차인이 새 집 계약금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대인이 해당 손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임차인이 몰취당한 계약금 5000만 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엄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계약금 액수 자체가 아니라 임대인이 손해 발생 가능성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라며 “객관적인 문자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특별손해가 인정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이사 갑니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무에서 임차인들이 가장 많이 놓치는 부분은 ‘통보의 구체성’이다.

많은 임차인은 집주인에게 “이사 갈 예정이니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원이 보는 것은 단순한 이사 계획이 아니라 손해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새 집 계약 체결 사실 ▲계약금 액수 ▲잔금 지급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계약이 해제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임대인에게 명확히 알려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대법원은 예견 가능성 판단 시점을 계약 체결 당시가 아니라 보증금 반환 의무가 발생하는 시점까지 포함해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계약 만기 직전이라도 구체적인 사정을 통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엄 변호사는 “단순히 ‘이사 갈 예정’이라고 말하는 수준으로는 특별손해 인정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새 계약 내용과 예상 손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를 객관적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카톡만 보내면 될까

증거는 많을수록 좋다.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새 집 계약 사실을 알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만 “새 집 계약금 3000만 원을 지급했고, ○월 ○일 잔금 예정이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계약이 해제될 수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임대인이 “알겠다”, “처리하겠다” 등 답변한 내용까지 남아 있다면 더욱 유리하다.

전문가들은 만기 1~2개월 전쯤 내용증명을 보내 공식적인 통지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엄 변호사는 “보증금 반환이 늦어질 조짐이 보인다면 새 계약 내용을 문서나 문자로 구체적으로 통지하고,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한 뒤 내용증명으로 반환 청구를 공식화해야 한다”며 “그래도 반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곧바로 전세금반환소송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절차를 미리 밟아두면 나중에 계약금 손해까지 배상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 팩트필터|전세금 못 받아 새 집 계약금 날렸다면

· 계약금 손실은 법적으로 ‘특별손해’에 해당한다
· 보증금을 못 받았다고 자동 배상되는 것은 아니다
· 임대인이 손해 발생 가능성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어야 한다
· 문자·카카오톡·내용증명 등 객관적 증거가 중요하다
· 계약금 액수와 잔금일, 계약 해제 가능성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 임차권등기명령과 전세금반환소송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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