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군 주왕산 장군봉에서 바라본 기암. 그 너머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주왕산 정상 주봉이다.
전국 24개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몇 년씩 순회 근무한다. 은연중 격·오지(隔·奧地) 순위가 짜이기 마련이다. 그중 2위가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이다. 10년 전까지 청송은 ‘육지의 섬’으로 불릴 정도였다. 2016년 서산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체감상 큰 차이는 없나 보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도 장점은 있다. 은거하기에 딱 좋다. 숨을 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그것은 전설이 된다. 어느 산인들 전설이 없겠는가만, 주왕산(周王山)에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기묘하면서도 친근한 큰 바위들이 그 전설을 1000년 넘게 지키고 있다.
●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주왕산에 관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훑거나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딴 산이라는 것이다. 주왕은 누구일까. 두 인물이 맞선다. 중국 당(唐)나라 주도라는 인물과 통일신라시대 김헌창(혹은 그의 부친 김주원)이다. 둘 다 왕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 자다. 그 바탕이 되는 두세 권의 옛 문헌과 인물과 해석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사(正史)는 아니다. 그래야 전설이 된다. 당나라 사람이 굳이 궁벽한 이곳까지 피신했다는 것이나, ‘삼국사기’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김헌창이 여기서 항전했다는 것이나 가당찮기는 마찬가지다.
주왕산국립공원 초입 청성군 상의리에서 바라본 기암.
그런데 말이다.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 격인 청송군 상의리에 들어서자마자 몇 km 앞에 보이는 장대한 암벽군(群)이 그 전설을 머릿속에 영화처럼 풀어내기 시작한다. 세로 길이 100m 안팎 7개 바위가 연봉을 이룬 기암(旗巖)이다. 주왕이 혹은 김헌창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깃발을, 혹은 병사가 많게 보이려고 깃발 수십 개를 꽂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름 위로 솟아 근두운 탄 손오공을 막은 부처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양식당 셰프의 주름진 흰 모자 토크(toque) 같기도 하고, 경복궁 근정전 용상 뒤에 걸린 일월오봉도의 그 오봉 같기도 하다. 반칙 아닌가.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이미 산을 다 본 것처럼 만드는 바위가 산자락에 앉은 듯 보이는 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대전사 경내에 장식된 연등들 위로 기암이 보인다. 사바세계를 굽어보는 것 같다.
점점 다가가 대전사(大典寺)에 이르니 기암이 그 위로 무동을 선 것 같다. 해발 480m에 솟은 기암을 계곡 너머 왼쪽에서 내려다보는 바위는 장군봉(해발 686m)이다. 주왕을, 혹은 김헌창 반란군을 토벌하러 온 마(馬) 장군이 기암 위에 반란군이 많이 있는지 올라가서 확인했거나, 혹은 반란군의 전초 망루 역할을 했다는 바위다. 장군봉은 상아를 뽐내는 코끼리가 돋을새김 된 듯도 하다. 전설은 한 줄기만 뻗지 않고 서너 가지를 쳐 나간다.
대전사 경내 너머 왼쪽이 장군봉이다. 사진으로는 오른쪽 기암보다 낮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200m가량 더 높다.
대전사를 오른쪽에 두고 주방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천변에 뒤돌아서 던진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고 잘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다. 무수한 자갈들이 바위 위에 깔려 있다. 그런데 4, 5년 전부터 돌을 던지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차라리 ‘딸바위’라고 부르라는 탐방객도 있다고 한다. 전설이 다른 길을 내려고 한다.
주왕산 용추계곡 가는 길 주왕천 변 아들바위. 돌멩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를 끼고 있는 용추계곡으로 향하는 길 좌우는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등 높고 넓은 암벽이다. 저 위 능선에 있지 않고 이 아래에서 협곡을 이룬다. 무엇 하나 뾰족하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줄 듯 다소곳이 서 있다.
용추계곡 가는 길 옆 연화봉.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핀 모양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추계곡은 절벽 사이 좁은 틈을 지나 고개를 들면 또 다른 비경이 자태를 드러낸다. 절벽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요르단 고대 암벽 도시 페트라 초입의 협곡 ‘알시크(al siq)’가 이런 느낌일까 싶다.
용추계곡 입구.
용추계곡 입구를 돌아들면 보이는 풍광.
두 번째 절구폭포와 세 번째 용연폭포는 묘하게 움푹 파인 못을 담고 있다. 절구 같고 용이 솟아오른 연못 같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약 7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용결응회암이 장구한 시간 퇴적되고 풍화된 결과다. 용결응회암은 화산재와 부석(浮石) 등이 분화 당시 날아가지 않고 용암의 800도 가까운 고열과 자체 압력으로 녹으며 굳은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데 표면은 과장하면 굳은 밀가루처럼 부스러지기 쉽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절벽 앨캐피탄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암벽이 즐비한데도 암벽 타기를 할 수 없는 이유다.
용추계곡 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
두 번째 폭포인 절구폭포.
세 번째 폭포인 용연폭포. 절구폭포처럼 2단 폭포다.
● 전설 잦아든 계곡에선 오롯이 나를이제는 기억에서 잊힌 떡시루 모양인, 다시 보면 인자한 노인의 얼굴 같은 시루봉과 주왕 혹은 김헌창 반란군이 밧줄에 물동이를 매어 주방천 물을 길어 올렸다는 급수대와 12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를 뒤로 하고 절골계곡으로 향한다. 대전사에서 동남쪽으로 약 15분 차를 타고 간다.
용추계곡 가는 길 급수대(왼쪽)와 주상절리.
급수대 맞은편 계곡 건너 시루봉.
12폭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는 병풍바위(오른쪽).
절골계곡에 깃든 전설은 없다. 그저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계곡물에 떼 지어 헤엄치고, 주왕산 깃대종 둥근잎꿩의비름이 그늘진 바위 지의류 틈새에서 피어나며, 누룩뱀이 전날 내린 비에 젖은 몸을 말리려 양지로 기어 나오고, 뱀들 다니는 길 들꽃 사이로 어른 엄지손톱만 한 새빨간 뱀딸기가 새초롬히 열릴 뿐이다.
절골계곡.
계곡 양쪽이 거대한 응회암 절벽의 연속인 협곡이다. 역시 깎아질렀으되 위압적이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초입부터 한동안은 설악산 흔들바위만 한 바위 수십 덩이가 시내를 메우고 있다. 암벽 신들이 ‘맘보공기’ 놀이를 하고 버려둔 공깃돌 같다.
절골계곡 버들치 떼.
절골계곡 뱀딸기.
주왕산 등산로든 절골계곡이든 걷다 보면 온통 그늘이다. 햇볕을 직접 쬐는 구간이 적다. 규정상 계곡물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되지만 한여름 동네 주민들이 발 담그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공단은 7~8월에 ‘계곡 트레킹’ 행사를 벌일 생각이다. 물길 따라 걸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1720년에 지은 저수지 주산지. 물결이 잔잔하면 앞에 보이는 주아산(별바위)가 물에 그대로 비쳐 보인다.
절골계곡 근처에 주산지가 있다. 1720년에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저수지다. 주위를 에워싼 주왕산과 주아산 능선이 바람 없는 날이면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흙에 있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가 300년째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식물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생명력을 지탱하려 안간힘 쓴다고 한다. 수면과 닿을 듯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람들 발소리 진동에 잉어들이 몰려왔다. 어른 팔만 하다. 이곳 수달도 손바닥 크기 잉어 새끼밖에 잡아먹지 못한다.
주산지 물속에서 뿌리를 내린 300년 된 왕버드나무.
새벽 캠핑 트레일러(카라반) 창밖 새소리에 잠이 깼다. 공단이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상의야영장에는 카라반(4인용) 10대를 비롯해 자동차 캠핑장과 숙박용 오두막 등이 있다. 문을 열고 주방천 쪽으로 걸어 내려와 기암을 다시 바라본다. 전설에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던 나옹(懶翁)선사가 등장한다. 그전까지 주방산, 석병산, 대둔산 등으로 불리던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1463년 ‘주왕내기(周王內記)’ 저자 눌옹(訥翁)과 혼동했을지 모른다. 나옹선사는 말없이, 티 없이 살라는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썼다. 그 한 대목을 되뇐다. ‘애초 사랑도 증오도 노여움도 아쉬움도 없다.’ 주왕산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