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현대자동차·기아의 호실적 덕에 국내 자동차 협력사들도 대부분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부품별로 분위기는 달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탓에 배터리 협력사들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이브리드카 판매량 급증으로 다른 전자장치(전장) 회사들은 고공행진을 했다. 하이브리드카 전용 부품 회사와 제품 교체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타이어업체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장 부품사는 모두 성장세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한 95개 차 부품사(대기업 제외)의 매출 합계는 99조1798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증가했다. 5개 국내 완성차 업체와 6개 대기업 부품사의 매출 증가율(5.5%)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부가가치 부품으로 꼽히는 전장 업체 8곳은 모두 매출을 늘렸다. 국내 최대 전장업체 한국단자는 지난해 매출이 1조5098억원으로 전년보다 16.4% 늘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3.4% 급증한 171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2023년 8.6%에서 지난해 11.3%로 높아졌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인쇄회로기판(PCB) 부품과 전자모듈 등을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한다.
차량 전자제어시스템 등을 공급하는 모베이스의 지난해 매출은 1조3017억원으로 2023년보다 3.1% 늘었다. 영업이익은 2023년 402억원에서 지난해 533억원으로 32.6% 증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삼성전자 납품 물량이 소폭 줄었지만 차량에 들어가는 전장 부품이 증가하면서 현대차·기아 공급량이 650억원어치가량 많아져 실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모베이스 자회사인 모베이스전자와 에코캡도 전장 부품 주문 증가로 지난해에 매출과 이익 모두 성장세를 이어갔다.
◇고수익 올린 하이브리드 부품사
하이브리드카 전용 부품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낙수효과를 봤다.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해 글로벌 하이브리드카 판매량은 전년 대비 각각 11.7%, 24.5% 불어났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를 찾는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이브리드카 전용 배터리(AGM) 등을 생산하는 세방전지는 지난해 급성장했다. 이 회사의 작년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은 각각 22.2%, 38.2%에 달했다. AGM은 일반 차량용보다 수명이 세 배 더 길고 차량 충돌 시 배터리 내부 액체가 흘러나오지 않아 안정성이 높은 배터리로 알려져 있다. 일반 배터리보다 비싸 이 회사의 수익성 개선에 효자 노릇을 했다는 게 세방전지 측 설명이다.
가스 누설 진단 부품(카본 캐니스터)과 연료이동관을 제조하는 코리아에프티도 하이브리드카 수혜 업체로 꼽힌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7359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375억원으로 2023년보다 10.6% 늘었다. 하이브리드카 전용 자동 변속기 부품 등을 생산하는 삼보모터스도 지난해 1년 전보다 9% 많은 1조570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5% 늘어난 542억원을 찍었다.
◇전기차 부품사는 울상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캐즘이 본격화하면서 관련 부품 기업들은 고난의 시기를 보냈다. 전기차용 모터 등을 제조하는 SNT모티브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1673억원(-14.7%) 줄어든 9689억원이었다. 지난해 영업이익 역시 981억원으로 전년 대비 185억원(-15.8%) 감소했다. 이 회사는 방위산업용 모터와 친환경 차량 구동모터 핵심 부품을 생산한다. 지난해 방산 분야 수출은 230억원가량 늘었지만 차량 부품 수출은 1223억원 줄었다. 차량 부품 내수 매출도 590억원 감소했다.
전기차 열관리 공조 시스템을 많이 생산하는 한온시스템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023년보다 5% 늘어난 9조9987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2023년 2835억원에서 지난해 955억원으로 3분의 1 토막 났다. 다른 공조업체 우리산업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1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6.5%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경기 침체와 전기차 화재 등으로 전기차 판매가 부진해 전기차 부품사들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앞으로는 우상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부 부품사가 지난해 전기차 판매 둔화에 따라 고전을 면치 못했다”며 “올 들어 유럽에서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해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어 향후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