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어머니 둔 김정은…일본과 관계 물꼬 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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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
김정은 생모 ‘고용희’ 생애 다룬 책
출판사 문예춘추 통해 일본서 출간

10살 때 북송선 타고 북으로 건너가
김정일 3번째 여인으로 3남매 낳아
후계 구도 지키기 위해 암 수술 미뤄
51세의 짧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고용희 일가의 즐거운 한 때. 해외여행 중 찍힌 사진이다. 왼쪽부터 큰아들 김정철, 고용희, 김여정. 김정은은 당시 유학 때문인지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다. [문예춘추]

고용희 일가의 즐거운 한 때. 해외여행 중 찍힌 사진이다. 왼쪽부터 큰아들 김정철, 고용희, 김여정. 김정은은 당시 유학 때문인지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다. [문예춘추]

“고용희는 재일교포로 10살 때 북한으로 건너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다가 평양에 진출해 김정일의 여인이 됐지만, 시아버지(김일성)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경계인의 삶을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용희의 삶을 다룬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을 쓴 저널리스트인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의 얘기다. 지난 20일 일본서 책이 출간됐는데, 이에 앞서 도쿄 시내에서 그를 만났다.

1958년생인 고미 요지 저널리스트는 도쿄 신문 재직 때 서울과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는 등 한반도 정세에 대해 해박한 전문가다. 북한도 두 번이나 방문할 정도로 북한 내부 사정에도 밝다.

지난 2012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과 주고받은 이메일과 인터뷰 내용을 모아 ‘아버지 김정일과 나(한국어판 제목은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를 출간한 바 있다. 이후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이 독극물로 피살되면서 이 책이 다시 조명받게 됐다.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인 고미 요지 저널리스트가 20일 일본서 출간된 본인 저서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을 들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인 고미 요지 저널리스트가 20일 일본서 출간된 본인 저서 ‘고용희-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을 들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다음은 그와의 문답 요지

-북한의 다양한 인물 중에서 고용희를 쓰게 된 경위는?

▶고용희는 김정은의 생모이지만 외부에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이름도 고희훈, 고영희 등으로 알려졌다가 최근에야 고용희로 정착됐다. 어머니가 겪었던 인생이 김정은이 최근 취하고 있는 행동과 관련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고용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집필에는 어느 정도 기간이 걸렸나?

▶10년 정도 조용히 자료를 모으고 기회가 될 때마다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김정남 피살 이후 주변에서 신변을 조심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신중하게 준비했다. 고용희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파리 병원에도 직접 찾아갔다. 고용희의 이복 오빠를 오사카에서 만나서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본격적인 집필은 2년 전 회사(도쿄신문)를 은퇴한 뒤에 시작했다.

-고용희는 왜 일본에서 북한으로 갔나?

▶1952년 오사카의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츠루하시에서 태어났다. 전라남도 목포가 출생지라는 얘기도 있는데 여러 정황상 오사카가 맞다. 아버지 고경택이 일본 물건을 몰래 한국으로 가져가 부산 암시장에서 판매하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일본도 밀입국 상태로 살던 처지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래서 고용희가 10살 때 가족 모두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게 됐다. 고용희의 선택은 아니다.

해외여행 중에 찍힌 고용희(오른쪽) 모습. [문예춘추]

해외여행 중에 찍힌 고용희(오른쪽) 모습. [문예춘추]

-북한에서 고용희의 삶은?

▶처음에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았다. 당시 북한에서는 재일교포를 간첩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서 차별당하고 감시받으며 생활했다.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지만 청진에서 평양으로 가게 됐고, 이후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김정일의 비공식 애인이 됐다. 순서로는 세 번째 부인인 셈인데, 이후 김정철-김정은-김여정 등 3남매를 낳았다.

-김정일에게 고용희의 의미는?

▶고용희가 눈치가 빠르다고 한다. 김정일의 마음을 잡은 것도 그 때문이다. 건강관리부터 일 처리까지 모든 부분에서 고용희가 도와줬다고 한다. 현지 지도도 같이 가는 등 이상적인 아내 역할을 했다. 오사카와 청진에서의 고생스러운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아서 더욱 악착같이 김정일에게 매달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 때문에 재일교포 사이에서는 자기 것만 하는 야심 많은 여자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김정일의 요리사로 근무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친절한 사모님이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김일성과의 관계는 어땠나?

▶김일성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김일성은 “왜 일본에서 온 여자를 사귀느냐”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일성과 고용희가 함께 찍은 사진도 없다. 김정은을 포함해 김정일과 고용희가 낳은 3남매를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암 발병 이후 치료중일 때의 고용희. 탈모 영향인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다. [문예춘추]

암 발병 이후 치료중일 때의 고용희. 탈모 영향인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다. [문예춘추]

-고용희가 일본에 자주 온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는 1973년 만수대예술단 소속으로 일본 공연에 참여했다. 당시 오사카 공연 때 친척들이 찾아갔는데 고용희가 아닌 척을 해서 친척들이 놀랐다고 한다. 아마 당시 김정일과 연애 초기로 사상 검증 단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모른 척 하는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일본서 고용희를 감시했던 노동당 간부가 북한으로 돌아가서 고용희가 일본서 무엇을 했는지를 김정일에게 보고했는데, 이를 들은 김정일이 크게 기뻐하고 더욱 고용희를 예뻐하게 됐다고 한다.

-고용희는 왜 일찍 죽었나

▶1997년 유방암에 걸렸다는 얘기가 있다. 수술하면 되는데 유방 절제 이후 김정일의 눈 밖에 날 것을 두려워해서 약물 치료를 선택했다고 한다. 후계자 구도를 굳건히 하려고 수술을 미뤘다는 얘기도 있다.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치료했던 미국 텍사스 휴스턴의 MD앤더슨암센터에서 수술받으려고 미국에 의료비자를 신청했는데 거부당했다는 얘기도 있다. 2004년 사망이 임박해서는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을 찾아서 마지막 치료를 했는데 결국 이 곳서 외롭게 죽고 말았다. 북한의 폐쇄적인 체제 탓에 가족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암치료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입국하는 모습의 고영희. 흰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예춘추]

암치료를 위해 프랑스 파리에 입국하는 모습의 고영희. 흰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문예춘추]

-김정은에게 고용희의 의미는

▶북한의 기록 영화를 보면 김정은에게 고용희가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화면이 있다. 일본말과 일본노래를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는 얘기가 있다. 특히 일본어는 언젠가 필요할지 모르니 기회가 되는대로 공부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정은도 정권을 잡은 뒤 일본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용희가 북한과 일본 관계의 물꼬를 틔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은 왜 고용희 우상화를 못 했나

▶북한 국민도 고용희의 출신을 다 알고 있다. 김정은의 백두 혈통을 강조하려면 고용희라는 존재는 없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도 제작하고 우상화 작업을 시도했다가 모두 중단했다. 위대한 어머니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재일교포는 아무래도 북한 사회에서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다. 어머니에 대한 동경과 콤플렉스가 함께 작용하면서 부인 리설주와 딸 김주애를 공식 석상에 노출하는 것 같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 등의 감정을 이 곳으로 돌리는 것 같다.

-북한 전문가로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북한에게 있어서 중국은 많이 도와주지만 주문도 많고 비판도 많다. 반면 러시아는 도와주지도 않지만 주문도 없고 그냥 즐겁게 노는 사이다. 중국이 엄한 아버지라면 러시아는 질 나쁜 친구의 의미다. 러시아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나면 북한을 바로 버릴 것이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러시아를 최대한 활용하고 중국과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현재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 같다.

한복을 입은 모습의 고영희 [문예춘추]

한복을 입은 모습의 고영희 [문예춘추]

-한국 새 정부에 대한 김정은의 생각은

▶진보 정권이지만 이번에는 대화나 접근 등에 있어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러시아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에 한미일은 순서 밖이다. 북한으로서도 과거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분위기다. 어쨌든 러시아 변수가 빨리 정리되어야 한미일도 북한과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책이 출간된 뒤에 기대하는 부분은

▶고용희라는 인물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책을 읽고 어머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으면 좋겠다.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나라인 일본에 가고 싶다. 오사카에 가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면 좋겠다.

-다음에 준비 중인 책은

▶한국의 진보 세력에 관해서 쓸 예정이다. 진보 세력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서 일본에서 관심이 많다. 과거 70~80년대 한국의 진보 세력의 운동에 대해 일본 시민단체가 지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시민단체는 당시의 진보 세력과 지금의 진보 세력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활동에 대해서도 한국은 관심이 없다. 이러한 부분 등을 포함해 한국 진보 세력을 전체적으로 분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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