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독립영화 잇단 흥행
'만약에 우리' 관객 120만 돌파
손익분기점 넘으며 최고 화제
'세계의 주인' 20만 관객 앞둬
대작 영화 사라진 극장가에서
SNS 입소문타며 흥행 질주
2억명에 달했던 극장 관객 수가 1억명으로 '반토막' 나면서 극장가가 본능적으로 몸을 낮춘 가운데, 제작비를 최소화한 저예산·독립예술영화들이 오히려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수백억 대작이 스크린에서 허무하게 증발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반면, 제작비를 극도로 압축한 '작은 영화'들은 되레 손익분기점을 가볍게 넘고 있어서다. 규모는 작아도 작품성이 확실한 성공작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향후 제작되는 새 영화들의 풍향계가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영화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김도연 감독의 영화 '만약에 우리' 관객 수가 120만명을 넘어섰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30억~4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개봉한 지 보름 만에 이 같은 흥행 실적을 거둔 것이다. 100억~300억원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이 '100만 관객'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조기 종영되며 OTT나 TVOD로 밀려나는 근래의 영화계 현실과 대비된다. '만약에 우리'는 손익분기점을 이미 넘어섰고, 평일인 지난 14일 기준 극장 관객 수가 '아바타: 불과 재'의 2배다.
'만약에 우리'가 거둔 뜻밖의 흥행은 3040세대의 입소문을 타면서다. 영화는 2000년대 초중반 학번이면 '극공감'할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고향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탄 은호(구교환)는 우연히 정원(문가영)과 옆자리에 앉게 된다. 둘은 '2006학번'이란 공통점으로 친구가 된다. '남사친' '여사친'은 고민 끝에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취업 준비와 불투명한 미래, 주고받은 상처, 잃어버린 초심 때문에 헤어졌다. 은호와 정원은 호치민발(發) 인천행 비행기에서 10년 만에 재회한다. 태풍으로 운항이 취소돼 발이 묶이자 마주 앉은 둘은 이제는 웃으면서 "그때 왜 그랬어"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만약에 우리가 그때 그런 선택을 했다면 계속 만나지 않았을까"란 은호의 막연한 가정과, 이에 대한 정원의 서글픈 반문 장면이 압권이다. 정원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인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은 향수를 일으키고 MP3 플레이어 아이리버, 노래방에서 부르는 가수 팀의 '사랑합니다' 등은 당대 감성을 호출한다. 서툴렀고 어설펐고 설익었고 초라했던 시간을 통과해온 세대의 기억을 건드리며 잔물결을 남긴다.
제작비가 '10억원'으로 알려진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은 현재 관객 수 19만4729명으로 '관객 수 20만명' 돌파까지 5000명 남짓이다.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기적'으로 불릴 만한 숫자다. 작년 10월 개봉 후 손익분기점은 8만명이었는데 '2025년 최고의 영화'란 입소문이 나면서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그사이 핑야오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낭트3대륙영화제 대상 등 해외 영화상을 휩쓴 데다 주연인 이주인 역을 맡은 배우 서수빈이 홍해국제영화제, 올해의여성영화인상,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춘사국제영화제 등을 싹쓸이하면서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다.
발랄하고 산뜻한 정서로 채워진 영화 '세계의 주인'은 단순한 하이틴 영화가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사건 이후'를 다루는 문제작이다. 이 영화는 피해자에게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피해자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피해자는 언제나 타자로부터 '피해자'로만 호명돼야 하는지, 피해자는 피해자라는 위치에 고정돼야 하는지를 서늘하게 묻는다.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낙인찍는다면 그는 평생 '사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피해자의 삶을 '치유와 회복'으로 단순화하는 관습을 거부한다는 점이 '세계의 주인'이 펼친 새로운 시도다. 중심인물 이주인이 세차장에서 울부짖는 장면과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이 받는 쪽지를 읽는 장면이 긴 여운을 준다.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박정민이 출연한 영화 '얼굴'은 저예산 영화의 실험을 가장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례다. 제작비는 2억원이었지만 관객 수가 107만명을 넘었고,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영화 순위 1위에 올랐다. 극장에서의 예상 못한 흥행과 OTT 플랫폼에서의 극적인 성공은 단지 오늘날 한국영화의 아이콘으로 승격된 '배우 박정민'의 힘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얼굴'의 서사는 '작은 영화'의 가능성을 또다시 입증하고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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