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니 개밥 털렸다" 영덕 기부 사료 2t 도둑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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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3.28 19:38 수정2025.03.28 19:38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영덕군까지 확산된 26일 오후 영덕읍 한 주택에서 산불에 놀란 강아지가 검댕을 뒤집어 쓴 채 앉아있다. 사진=뉴스1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영덕군까지 확산된 26일 오후 영덕읍 한 주택에서 산불에 놀란 강아지가 검댕을 뒤집어 쓴 채 앉아있다. 사진=뉴스1

역대 최악의 피해를 기록 중인 경상권 연쇄 산불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8일 현재까지 소중한 28명의 인명을 앗아간 것은 물론 삶의 터전까지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불 사고가 난 지역이 대부분 노령인구 비중이 높은 곳이라 반려동물의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서는 노인들이 개를 목줄로 묶어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지에서 구호 물품 등 온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 동물단체가 주민들에게 나눠주려던 사료 2t을 도둑맞는 황당한 사건도 발생했다.

동물자유연대에 따르면 산청과 의성으로 각각 1~2차 선발대를 급파해 지난 22일부터 27일까지 약 30마리 동물을 구조 및 구호했고 반려동물을 위한 쉼터와 대피소도 만들었다.

카라, 코리안독스, KK9R, 유엄빠 등 동물단체가 연합한 루시의친구들도 23일부터 현장에서 활동 중이다. 선발대는 산불 피해가 가장 심각하고 노인 비중이 높은 의성에서 24마리 동물을 구조했다.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고양이, 줄에 묶인 만삭 어미 개, 달궈진 쇠 목줄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개, 축사에 갇혀 온몸에 화상을 입은 염소 등이었다.

영남 지역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해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는 가운데, 쇠줄에 묶여 집에 남겨졌던 어미 백구가 새끼들을 지켜낸 사연은 감동을 줬다.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어미 백구와 새끼들. 어미는 불에 그을리고 화상을 입으면서 새끼를 지켜냈다. 안타깝게 화마에 희생된 새끼도 있었다. / 출처 = 동물구조단체 '유엄빠'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어미 백구와 새끼들. 어미는 불에 그을리고 화상을 입으면서 새끼를 지켜냈다. 안타깝게 화마에 희생된 새끼도 있었다. / 출처 = 동물구조단체 '유엄빠'

26일 동물구조단체 ‘유엄빠(유기 동물의 엄마 아빠)’에 따르면 지난 23일 경북 의성에서 어미 백구 한 마리가 새끼들과 함께 구조됐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어미 백구는 구조 당시에도 새끼들을 품 안에 꼭 안고 있다.

유엄빠 측은 "어미는 불길 앞에서 새끼를 지키려 피부가 찢기고 벗겨질 때까지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흔적이 역력했다"면서 "문 앞에는 이미 죽은 새끼 한 마리가 잿더미 속에 누워있었다"고 전했다.

어미 백구는 불에 달궈진 뜬장 때문에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상태였고, 모유를 먹이느라 불어난 가슴 부위에서도 화상 흔적이 발견됐다. 어미 백구는 불길 속에서도 새끼들을 지키느라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 것으로 추정됐다.

전국 곳곳에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27일 오전 경북 의성군 한 사과밭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 곳곳에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27일 오전 경북 의성군 한 사과밭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뉴스1

동물단체 위액트(WeAct) 역시 지난 23일부터 산청, 영덕, 의성 등지에서 구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위액트는 "산청에서는 집과 밭이 모두 타버린 폐허 속, 작은 고무집에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를 구조했다. 목에 묶인 쇠 목줄에서 그을음이 떨어졌다”며 “영덕도 반려동물을 찾기 위해 발만 동동 구르며 도움을 청하는 보호자들이 많았다. 구호물자로 나온 달걀, 라면을 반려동물에게 나눠주는 어르신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위액트가 27일 밤부터 자정까지 봉사자들과 함께 사료 2t을 영덕 군민운동장 한 쪽에 쌓아두었으나 이를 도둑맞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위액트 측에 따르면 "28일 현장을 다시 찾아보니 감쪽같이 사료가 사라지고 없었다"면서 "CCTV를 확인해본 결과 이날 새벽 6시 무렵 5~6명의 청년이 사료를 다 실어 가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전했다.

위액트는 영덕 군민운동장에 사료를 모아놓고 이를 거점으로 수색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색을 다녀온 사이 사료가 1포도 남김없이 사라져 활동가 및 봉사자들은 난감한 상황이라는 것.

동물단체 위액트 제공

동물단체 위액트 제공

위액트 측은 "차에 구비해 놓은 사료가 소량 남아있어 마을 개들을 위한 밥, 물 급여는 가능하지만 금방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사료를 기다렸을 영덕 군민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린"고 안내했다. 아울러 "오후 5시까지 되돌려 놓지 않을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위액트 측은 앞서 SNS를 통해 사료가 필요한 영덕 군민들에게 사료를 배포하겠다는 공지를 올려왔다. 용의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범행을 모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남 산청군·하동군, 경북 의성군·안동시·영덕군 등에서 수일 째 계속된 산불로 이날 오전 6시 기준 65명 사상자(28명 사망·9명 중상·28명 경상)가 발생했고 3만3000여 명이 대피했다. 피해 산림면적은 4만8150㏊로, 역대 최악이던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794㏊)의 두 배를 넘겼다.

동물의 경우 정부가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는 않고, 민간 동물단체들이 각자 현장 구조를 펼치며 체크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단체별로 취합하면 그 수가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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