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0년 동안 경험을 쌓았던 한가람은 K리그 1년 차에 감격스러운 우승을 경험했다. 그리고 2년 차에 국내축구 최고 무대인 K리그1에 도전장을 내밀 예정이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한가람이다. 그는 성남미금초, 대신중을 거쳐 2013년 15살의 나이에 독일로 향했다. 청소년 시절 폭넓은 경험을 위해 과감하게 해외 생활을 선택했고, 블루멘탈, 아르스텐 유스팀을 거쳐 2017년 독일 하부리그 오버노일란트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일찌감치 지도자의 꿈을 키워가기도 했다. 어린 나이부터 축구선수 그 이후 생활에 고민을 이어가며 19세 나이에 유럽축구연맹(UEFA) 라이센스 B(지도자 자격증)을 따냈다. 이후 VfL 슈포르트프로인데 로테, BSV 슈바르츠바이스 레덴 등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2023년 여름 거듭된 부상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독일을 떠나 국내로 복귀했다. 자칫 축구선수 생활까지 그만두려고 했던 그였지만, 지난해 FC안양과 손을 잡으며 국내 프로축구 무대를 향한 다시 한번의 ‘도전’을 선택했다.
한가람은 지난 시즌 개막전 교체 투입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7라운드 부산 아이파크전에서는 첫 선발 데뷔전을 치르며 안정된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현, 리영직 형들의 벽은 높았다. 유병훈 감독 체제에서 김정현, 리영직이 팀의 핵심 3선으로 자리 잡으며 한가람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시즌 막판 기회를 잡았다. 주축 수비수들의 부상으로 우승 경쟁에 적신호가 켜진 안양은 리영직을 중앙 수비수 자리로 내리고 김정현의 파트너로 한가람을 내세웠다. 그는 막판 “간절한 마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었던 기억이 크다”라며 안양의 오랜 염원이었던 승격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노력했다.
1년 차 한가람은 이번 시즌 공식전 10경기 출전을 기록했다. 적은 기회에도 “출전하지 않는 선수들이 어떤 태도와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해야 하는지 배웠던 시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년 차 K리그1 무대에 도전하며 “쓰러지지 않는 마음으로 지독하게 할 것”이라고 각오했다.
■ 다음은 FC 안양 미드필더 한가람과의 인터뷰
- 우승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마냥 쉬기보다는 다음 시즌을 준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즌 종료 후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휴가였지만 풍경을 보면서 러닝과 조깅을 하고, 헬스장 1회권을 끊어 몸 상태를 유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 새 시즌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1부 리그로 향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지난 시즌은 모두가 함께 이뤄낸 승격이에요. 그중 형들의 기여도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형들께서 분명 쉬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을 텐데도 마지막까지 뛰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 해가 됐습니다. 팀적으로는 안양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많은 곳에서 화제가 되어서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 지난 시즌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떤 선수였던 것 같나요?
시즌 막판에는 제가 좋아하는 플레이, 감독님께서 원하시는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기에 많이 나서지는 못했지만 시즌 후반부에는 온전히 저라는 선수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절대 100% 만족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연히 부담감이 컸었지만 현재는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는 K리그1에서 타 팀과 경기를 해야 하니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데뷔 시즌이었어요. 2024 시즌을 돌이켜보면서 K리그는 어떤 무대로 다가왔나요?
진짜 쉽지 않았어요. 진짜... 이제 1부로 올라간 만큼 또 어려움이 있겠죠? K리그2는 정말 경쟁이 심한 강한 리그였습니다. 독일에는 ‘JEDER KANN JEDEN SCHLAGEN(예더 간 예덴 슐라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가 모두를 이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나라 말로는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뜻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K리그2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팀들이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그럼 승격에 대한 부담감도 당연히 크겠죠?
사실 작년에 K리그2 무대에 오면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다 보니 설렘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무대, 많은 팬들 앞에서 FC 안양을 보여줘야 하고, 나라는 선수를 보여준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어색했던 일들이었습니다. 두려움도 있었고요. 1부 무대에서도 똑같은 마음으로 임하고자 합니다. 다만, 더 강하게, 설레는 마음으로 뛰고자 합니다.
- K리그1 팀들 중에서 가장 맞대결을 펼치고 싶은 팀은 있을까요?
울산 현대, 전북 현대입니다. 어쩌다 보니 ‘현대가 라이벌’ 두 팀이네요. 두 팀은 K리그에서 왕조를 세웠던 팀들입니다. 현재 제가 어느 정도 선수인지 궁금합니다.
- 새로운 무대에 어색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혹시 독일에서 10년 동안 생활해왔던 부분들이 K리그 적응에 도움이 됐던 부분이 있을까요?
저는 원래 사람들에게 먼저 잘 못 다가가는 유형이에요. 소위 ‘I(MBTI)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 생활 초반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점차 독일 무대에 적응하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고, 사람 자체가 많이 외향적으로 변하게 됐네요. 안양에 온 뒤에도 제가 먼저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다 보면 스스로 기회를 없애는 상황이 올 것 같았습니다.
축구적으로는 수비형 미드필더다 보니 수비적인 부분 또한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로 바뀐 것 같습니다(웃으며). 어릴 때 대체로 수비 상황에서는 기다리라고 배웠는데, 막상 독일을 가니까 왜 기다리고만 있냐고 욕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었습니다. 그래서 파이팅 넘치는 수비가 큰 장점이 됐습니다. 아직 안양에서는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 시즌 막판에는 조금이나마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잘 보여줘야 할 것 같네요.
-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다시 돌아오고자 했던 계기가 있었을까요?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스포츠계에 일하시는 지인들이 있는데, 그분들께서 하나같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축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양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저는 지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고민했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선수 생활을 더 하고자 선택했습니다. 감독님께서 바로 계약하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나도 심장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정확히 202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20분쯤이었던 것 같아요. 효창운동장에서 운동하고 카톡이 몇십 개 와 있었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었고, 당시 에이전트께서 해외에 계셨는데 잠을 설치면서 구단과 합의했었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안양이라는 팀이 새롭게 보였을 것 같네요.
‘아, 이제 내가 뛰어야 할 팀이다’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동안 안양 경기를 많이 챙겨봤습니다. 집이 멀지 않은 곳이라서 국내 들어올 때마다 K리그 직관을 갔었는데 계약하기 두 달 전에도 경기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팬들이 ‘수카바티!’라고 외치는 모습을 봤는데, 이제는 저에게 힘을 주시는 분들이 됐네요.
- 사실 지난 시즌 출전 기회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기회를 기다렸을까요?
부산전 이후 기회를 받지 못해서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재밌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힘들면 여행을 가거나 밖으로 나가고 그래야 하는데 푸는 방법을 몰라서 운동을 합니다. 빨리 이 시간들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네요. 그러면서도 정현이 형, 영직이 형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경기에 나설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막판 부천과의 경기에서 기회를 잡았고, 그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노력했었습니다.
시즌을 치르면서 여름에 대상포진이 올라왔던 적이 있어요. 당시 심각할 정도로 아팠는데, 좀 나아지니 빨리 운동장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당시 팀이 다소 부침을 겪고 있던 시기라서 내가 가서 한 번 분위기를 끌어올려 보자는 마음이었죠. 복귀 후 더 즐겁게 할 수 있었고 몸 상태도 더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이 시즌 후반부랑 맞아떨어지면서 기회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형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갔습니다. 정현이 형이 갖고 있는 장점, 영직이 형이 갖고 있는 장점. 물론 경쟁자지만 형들께서도 많은 부분 신경 써주시고 끌고 가주셨습니다. 정현이 형한테는 많이 혼나면서 배웠네요. 형께 들었던 말들을 기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루는 전화해서 ‘부끄럽지만 형의 말 한마디에 많이 자극받고 영향받고 있다’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직이 형은 운동장에서는 파이터인데 밖에서는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언을 구하면 늘 다독이는 말로 답해주시고, 도와주세요. 부산전에서 영직이 형이랑 함께 뛰었던 적이 있는데, 당시 실수해도 영직이 형이 옆에서 괜찮다면서 계속해서 힘을 주셨습니다. 항상 자신감을 채워주셨어요.
정리하자면 아빠 같은 김정현, 엄마 같은 리영직이라고 할까요? 두 형들 덕에 뛰지 못했던 시간 동안 배움으로 채워갔습니다.
- 유병훈 감독님은 한가람 선수에 대해 ‘수비적인 헌신도가 높은 선수’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가람 선수가 바라보는 유병훈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를 구해주신 분이죠. 축구를 그만두려고 했으니까요(웃으며). 감독님 밑에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축구 공부를 많이 하십니다. 감독님께서 감독실에서 혼자 축구를 보고 계신다는 말과 목격담을 너무나도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은 생각을 갖고 팀을 이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 동안 함께하고 싶습니다. 혹여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밑에서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 2024시즌 자신에 대해 100%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2025시즌 K리그1 무대에 도전하는 한가람은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딱 한 가지예요. 팀에 헌신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뛰는 선수,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화려한 선수가 아닙니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지도 않고요. 오로지 팀을 위해 뛰는 선수였다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앞서 ‘JEDER KANN JEDEN SCHLAGEN(예더 간 예덴 슐라겐)’이라고 말했듯 모두가 모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양이 1부에서 못 이길 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팀에 든든한 선수로 남아보고 싶습니다.
- 끝으로 팬들께 전하고 싶은 말 있을까요?
우리 안양을 이야기하면 우리 팬들을 당연히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못하는 경기, 지는 경기가 분명 있었는데, 팬들께서는 언제나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원동력 또한 팬들 덕분입니다. 우승 이후 팬들께서 ‘해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DM을 많이 보내주시는데, 이는 우리 선수들만의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팬들께서 함께 뛸 수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1분이라도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는 팬들이 되시게 만들겠습니다.
[김영훈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