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이훈 한국투자공사(KIC) 투자운용부문장(CIO)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는 가운데 1년 연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훈 CIO 임기가 다음달 16일 끝나는데, 후임 CIO 인선을 위한 절차는 아직 시작도 안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해외투자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CIO가 바뀌면 또다른 리스크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KIC가 투자호흡이 긴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려면 CIO 임기를 지금보다 길게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후임 CIO 절차 ‘아직’…美 외국 직접투자 ‘급감’
2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훈 KIC CIO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임기만료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신임 CIO 모집공고가 안 올라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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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 KIC CIO (사진=KIC) |
이 본부장은 KIC의 내부 출신 CIO다. KIC에서 내부 출신이 CIO를 맡은 것은 지난 2012년 이동익 전 CIO에 이어 두 번째다.
그는 1969년생으로 서강대학교 경제학 학사, 미국 버클리대학교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우리투자증권 기업분석팀, 한국투자증권 기업분석부를 거친 후 지난 2014년 KIC가 리서치센터를 설립했을 때 합류했다.
그는 KIC에서 자산배분팀장과 전략리서치팀장, 운용전략본부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 2021년 8월부터 KIC 미래전략본부장을 지냈다. 미래전략본부장은 KIC의 미래전략 수립과 통합 포트폴리오 수립 및 점검, 국내 금융산업 발전 지원 등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훈 CIO 임기는 다음달 16일 끝난다. 과거 선례를 고려하면 KIC CIO 선임에 6~8주 정도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KIC CIO 선임 절차가 후보자 서류 심사, 면접 심사, 운영위원회 심의, 사장 임명 순으로 진행돼서다.
또한 KIC 정관에 따르면 CIO는 임기가 3년이고,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자격 요건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국제기구에서 10년 이상 투자 업무 종사 및 공무원 임용 결격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CIO는 KIC의 핵심 경영진 중 한 명으로, 연임 여부가 KIC의 투자 전략 및 경영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정관에 따른 절차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기가 한 달 남짓 남았는데 후임자 선임 절차가 시작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연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LP)들이 내부 출신 CIO를 기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보험사나 자산운용사 등에서 수년간 해외 근무 경력이나 대체투자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을 선호하는 분위기였지만, 기관마다 업력이나 투자 노하우가 쌓이면서 내부 인사의 능력도 충분히 검증된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해외투자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KIC CIO가 바뀌면 또다른 리스크 요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는 528억달러(약 71조7710억원)로, 작년 4분기 수정치인 799억달러(약 108조6080억원)보다 약 34% 급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무역 긴장 고조와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 자본의 투자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대체투자, 거래빈도 낮고 네트워크 효과 ‘필수’
KIC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수익률 제고를 위해 대체투자 비중을 확대하려면 CIO 임기가 지금보다 길게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체투자는 주식·채권 등 전통자산과 달리 거래비용이 많이 들어서 거래 빈도가 낮고, 투자수익을 얻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해서다.
KIC 대체자산(사모주식, 부동산, 인프라스트럭처, 헤지펀드, 사모채권) 규모는 작년 기준 452억달러(약 61조4584억원)로, 전체 투자 비중의 21.9%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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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 2024년 자산배분 현황 (자료=KIC) |
각 대체자산별 비중은 △사모주식 7.6% △부동산 5% △인프라 4.4% △헤지펀드 2.7% △사모채권 2.0% 순이다. 사모채권은 작년 1월부터 별도의 자산군으로 분리 운용되고 있다.
KIC의 대체자산 투자수익률은 최초 투자 이후 작년까지 연 환산 기준 7.68%로 집계됐다. 각 자산별 최초 투자 이후 연환산 수익률은 △사모주식(9.41%) △부동산·인프라(6.83%) △헤지펀드(5.72%) △사모채권(작년 1월 2일 투자 개시) 등이다.
대체투자 중 한 섹터인 부동산의 경우 코어자산(핵심 지역에 위치한 자산)에서 원하는 수익률을 내려면 5년 이상은 투자해야 한다. 코어자산인 오피스의 펀드나 리츠(부동산투자회사·REITs) 만기는 7년 이상이고, 길면 10년에 달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 LP들은 해외 주요 연기금 대비 CIO 임기가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최대 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캘퍼스·CalPERS)이 전세계 연기금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CIO 임기는 평균 5.1년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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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캘퍼스 ‘Chief Investment Officer: Prior Search Recap and Search Relaunch’ 일부 캡처) |
현재 캘퍼스 CIO인 스테판 길모어는 작년 7월 임기가 시작됐으며, 직전 직책이 뉴질랜드 연기금(NZ Super Fund) CIO였다. 그가 뉴질랜드 연기금에서 CIO로 재직한 기간은 5년이 넘는다.
캐나다 연금 투자 위원회(CPPIB)의 초대 전담 CIO로는 에드윈 캐스가 지난 2020년 9월 임명됐다. 그의 역할 중 하나는 오는 2025년 이후의 CPPIB 투자의 예상 규모를 다루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14~2017년까지 CPPIB의 최고 투자 전략가 역할도 맡았었다.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도 CIO 임기가 길다. GIC의 CIO인 제프리 쟌수바키즈는 지난 2017년 임기를 시작했으며 올해 사임한 후 고문을 맡고 있다. 그가 CIO로 재직한 기간은 8년에 이른다.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의 경우 CIO 임기가 2년으로 짧다. 다만 GPIF는 주로 위탁운용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해외 대체투자는 공개 유통시장이 없고, 비공개 정보 획득이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해외 대체투자 관련 비공개 정보를 획득하려면 각 자산에 특화된 운용사 등과 물리적 교류를 확대해야 하는데 CIO 교체가 잦으면 네트워크 효과가 줄어든다.
KIC 등 국내 대형 기관이 장기적으로 투자 성과를 높이려면 정권 교체 등과 무관하게 CIO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해외 운용사(GP)들은 국내 대형 기관들의 CIO 교체가 잦으면 피로감을 느낀다”며 “CIO가 자주 바뀌면 해외 GP들 입장에서는 몇 년 후 어차피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들여 관계 맺으려는 마음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KIC 고위 관계자는 “인사를 보류하고 있다”며 “지금 단계에서 얘기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