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은 415경기를 뛰면서 8140점(경기당 19.61점), 142리바운드(평균 7.57개), 1777어시스트(4.28개), 771스틸(1.86개)을 기록했고, 7차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2003년에는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무대에도 진출했다.
누가 봐도 타고난 천재였을 것 같지만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는 ‘미운 오리’였다. 정선민은 “초등학교 시절엔 ‘볼 보이’를 도맡아 했다. 얼마나 실력이 형편없었던지 중학교에 진학할 때 선생님으로부터 ‘농구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중학교 농구부에 들어갔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래서 그는 독학으로 농구를 익혔다. 롤모델은 당시 남자 농구에서 맹활약 중이던 ‘슛 도사’ 이충희였다. 그는 TV에서 본 이충희의 자세를 따라 틈나는 대로 연습했다.볼품없던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최동원 당시 마산여고 감독이었다. 최 감독은 중학교 3학년이던 정선민에게 마산여고에 와서 언니들과 함께 훈련하라고 지시했다. 얼떨결에 언니들 틈에 끼게 된 그는 혼나지 않기 위해, 또 언니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쉬는 날도 혼자 체육관에 가서 슛을 던졌다.
그가 ‘백조’로 다시 태어난 것은 고교생이 돼서였다. 고교 입학 후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 32점을 쏟아 넣었다. 농구계에선 ‘어디서 이런 선수가 나타났느냐’면서 난리가 났다. 이후 그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정선민은 “어릴 적 키가 작고 농구를 못 했던 게 어찌 보면 축복이었다. 덕분에 가드부터 포워드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기본기를 닦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도자로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는 중이다. 남자 학교인 인헌고를 시작으로 여자 프로팀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등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2021년에 한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 사령탑이 돼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는 요즘은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면서 간간이 농구 봉사를 하면서 지낸다. 선수 시절 과도한 운동을 한 탓에 그는 발목과 허리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는 것 역시 운동이다. 이틀에 한 번은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서 2시간가량 운동을 한다. 자전거와 트레드밀에서 땀을 낸 후 하체와 허리 위주로 근력 운동을 한다. 윗몸 일으키기 100개는 거뜬하다. 그는 “근력이 떨어지면 바로 통증이 온다. 좋지 않은 관절은 근력으로 버텨야 한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라도 평생 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농구 외엔 별다른 취미가 없는 그는 요즘도 온통 농구 생각이다. 오전엔 미국프로농구(NBA)를 보고, 저녁 시간에는 남녀 프로농구를 시청하며 공부를 한다. 정선민은 “언젠가는 프로 팀을 맡아 선수들을 지도해 보고 싶다”며 “평생을 농구인으로 살아온 만큼 농구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전문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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