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정 서울대병원 교수 “aHUS 진단~투약 평균 30일… 선처방 구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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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의료현장에서 에쿨리주맙을 처방한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의료현장에서 에쿨리주맙을 처방한 경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제공

한국만 예외였다. 희소 신장질환인 비정형 용혈요독증후군(aHUS) 환자에게 투여된 ‘에쿨리주맙’의 치료 결과는 세계 어디서나 긍정적이었지만, 국내에선 유독 예후가 좋지 않았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진단부터 투약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이미 신장은 망가진 뒤였다.

“신장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약이 효과를 내기엔 이미 늦은 시점에서야 처방이 시작됩니다.”

유럽신장학회(ERA)가 열린 오스트리 빈에서 8일 만난 이하정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aHUS 치료제인 에쿨리주맙(상품명 솔리리스, 바이오시밀러는 에피스클리)에 대해 “환자가 있어도 정작 처방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2023년까지 국내 환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진단부터 첫 투약까지 평균 30일이 소요됐다. 그는 “글로벌 기준은 진단 후 일주일 내 투약이 가장 좋다는 것인데, 한국 환자들은 그 골든타임을 빈번히 놓쳤다”고 말했다.

aHUS는 외부 감염에 대한 우리몸의 1차 방어선(선천면역)인 보체 시스템의 조절실패로 신장과 전신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희소질환이다. 혈소판 감소, 빈혈, 급성 신장 손상 등이 동시에 나타나며 치료가 지연되면 투석이나 이식이 불가피하다. 원인 유전자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다른 질환과의 감별도 어려워 ‘비정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진단 기준도 불분명하다보니 국내 환자 수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질환의 주요 치료제는 보체 단백질 C5를 억제하는 약물이다. 에쿨리주맙이 대표적이며, 최근에는 장시간 지속형인 ‘울토미리스’(성분명 라불리주맙)도 도입됐다. 다만 울토미리스는 초기 투약비가 더 높고, 국내 임상경험이 적어 아직은 접근성이 제한적이다. 이 교수는 “옵션이 늘어난 건 환자에게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인 접근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에쿨리주맙 계열이 더 실용적”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신장이식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급여 대상에서 일괄 배제되기도 했다. 이식으로 인한 감염이나 거부반응 등 ‘2차성 질환’이 원인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이식이 ‘질환을 드러내는 자극’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필요한 치료임에도 기준에 막혀 쓰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신장이식 환자에 한해 예외 조항이 생기면서 일부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사전 심사를 통한 제한적 접근만 가능하다.

aHUS 환자의 치료를 어렵게 만드는 허들은 제도와 절차다. 진단에 필요한 ADAMTS13 검사는 외부 위탁 시 일주일 이상 걸리고, 급여 신청 후 승인까지는 신속해도 5일~2주가 걸린다. 서울대병원은 자체적으로 수행하면서 검사 시간을 줄이고 있지만, 다른 병원은 외부에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교수는 “혈류 공급에 민감한 신장은 그렇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제도는 환자 상태보다 서류 기준을 더 본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이 교수가 첫 처방했던 환자는 신장이식 후 재발로 입원한 환자였다. 에쿨리주맙(솔리리스)을 투약했고, 급격히 떨어졌던 신장 기능을 회복했다. 하지만 유전적 변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가 투여가 허가되지 않았다.

이후 등장한 바이오시밀러 에피스클리 덕분에 의료현장은 일부 숨통을 틔웠다. 약가는 오리지널 대비 약 2/3 수준이며,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제공하는 환자지원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에피스클리 출시 이후 국내 aHUS 환자들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심사기간 동안 에피스클리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약은 무조건 평생 써야 하는 약이 아니다”라며 “초기 1~2회만이라도 선처방-후심사로 허용된다면, 구할 수 있는 콩팥이 분명히 더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빈=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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