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이재명표' 35조원 추경안에 "진통제는 적절히 써야"(종합)

3 weeks ago 5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최근 대내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적정한 추가경정예산(추경) 규모가 15조~20조원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도한 추경은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추경 필요하지만 규모는 15조~20조원이 적정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근 상황을 고려한 적정한 추경 규모를 묻자 “지금 현 상태에서도 저희(한은)는 추경 규모를 15조~20조원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달 16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기준금리 결정 이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추경의 적정 규모에 대해 밝힌 바와 같다.

이 총재는 “추경에 관해서는 시기, 규모, 내용이 모두 중요하다”며, △장기재정건전성 △최근 대내외 여건 △추경만으로 자영업자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는 점 △경기에 주는 영향 등을 감안했을 때 필요한 추경 규모가 15조~20조원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을 통해서 경제성장률을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이 지금 저희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한 0.2%포인트 정도 떨어졌다면 그 정도를 보완하는 규모로 추경을 하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서 한은은 비상계엄이 우리 경제에 미친 충격과 관련, 기존 작년 4분기 성장률 전망치(0.5%)와 실제 성장률 0.1%(속보치)의 차이인 0.4%포인트 중 절반인 0.2%포인트 정도가 비상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에 의한 내수 부진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이 총재는 “올해 성장률을 1.6% 정도로 지금 보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불확실성 외에 미국의 여러 가지 경제정책이라든지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정책 등의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면서, 한은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의 전망에도 기준금리 인하는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성장률을 이보다 올리기 위해선 재정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추경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관련 질의에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줄 수 있지만 올해 35조를 쓰면 내년에도 35조 이상 추경을 하지 않으면 성장률에 음의 효과를 주게 된다”면서 “한 해의 성장률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정을 많이 지출했을 때 내년도 성장률이 어떻게 될지 이런 것을 다년간에 걸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재정 지출을 진통제 남용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진통제를 많이 쓰면 지금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 안 좋은 것처럼 적절한 양의 진통제를 써야 한다”고 부연했다.

민생지원금 지원과 같이 현금을 뿌려 소비를 진작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경제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현금을 나눠주는 것은 전산체제나 이런 것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을 때 하는 방식”이라며 “소비 쿠폰을 전체적으로 나눠주게 되면 잘 되는 식당에서만 더 쓰게 된다. 그렇게 나눠주는 것보단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지원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추경의 시기에 대해서는 ‘결정이 빠를수록 좋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 총재는 “상반기에 조기 집행을 하고 하반기에는 재정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 (추경) 결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금리 인하, 환율 상승압력 주는 것 사실이지만

다음주 금통위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통화정책방향 결정 시에는 한가지 변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통화정책 결정과 관련해 현재 가장 어려운 변수로는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와 환율 대응 간 딜레마가 있지 않느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기준금리와 환율 간의 관계는 일대일로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금리가 인하되면 환율에 상승 압력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통화정책을 할 때 한 변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가와 금융안정, 환율, 경기 모든 걸 본다”고 답했다.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 가장 한계를 느끼는 부분에 대해선 “물가는 안정된 반면에 지금 대외 부분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라며 “환율뿐만 아니라 통상 관계된 불확실이 커진 것이 단기적으로 가장 문제인 것 같다”고 답했다.

최근 물가 상승률은 안정됐지만 물가 수준 자체가 높아 체감 물가가 높다는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는 “지금 물가 상승률은 안정돼 가고 있지만 상승률이 양수이기 때문에 물가 수준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면서 “고물가라고 할 때 상승률이 아니라 물가 수준이 높아서 고통받는 것은 지금 그 정도가 약화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물가상승률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통해서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가 수준, 특히 저물가 상품의 (물가) 수준이 높은 것은 수입을 확대한다든지 여러 가지 구조 개혁 없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물가 상승기에 가격이 저렴한 상품의 가격이 더 빠르게 올랐다면서 물가 상승이 저소득층에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대출(왼쪽) 국민의힘 의원과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 국회방송 캡쳐)

한은 총재 ‘정치 발언’ 둘러싼 공방도

이날 회의에서는 이 총재의 ‘정치적’ 발언을 둘러싼 공방도 오갔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작년 말 정례 국무회의에서 공석이었던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을 전격 임명하고,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하자 정치권은 물론 정부 일부에서도 비판이 빗발쳤다. 이에 이 총재는 연초 신년사 등을 비롯해 공개 석상에서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며 최 권한대행을 지지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헌법 재판관 임명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언행”이라며 “한은 총재는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또 경제전문가로서, 고위공직자로서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정치에 관여한 것으로 비치거나 오해할 수 있는 사안에서는 거리를 둬야 하는데도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도 “한은의 고유의 업무 영역이 아닌 부분까지 과다하게 발언을 이어 나가는 부분에 대해서 (한은 총재가) 스스로 한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는 화를 부른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은 분들이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헌재 재판관 임명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총리 탄핵 이후 우리나라의 콘트롤 타워로 있는 사람이 흔들려서는 우리 경제 체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말씀 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한덕수 총리에 이어 최 권한대행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 총재의 발언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한은 총재가 계엄 시기 또 그전에 우리 상임위 활동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소신 발언을 했고 거기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다”며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수장으로서의 진심 어린 조언이고 의견 표명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한은 총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한은 총재가 적극적인 발언도 하고 다양한 여러 가지 현안들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