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민주당 사법부 때리기, ‘연성 내란’이다

3 weeks ago 13

대법원장 탄핵, 특검, 대법원 재구성법
정치 후진국에서 자행되는 ‘연성 내란’
‘내란 종식, 민주주의 복원’ 공약하지만
민주주의는 총칼로만 무너지는 게 아냐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기어이 사법부를 손볼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이 선거를 앞두고 이례적인 속도로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자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희대의 난’을 일으킨 책임을 묻겠다며 자진 사퇴와 위법 소지가 다분한 청문회 출석을 요구했고, 자진 사퇴도 청문회 출석도 거부하자 명확한 범죄 혐의도 없이 ‘조희대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 후보 사건에 유죄 의견을 낸 대법관 10명을 탄핵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대법원장 손보기는 민주주의의 토대인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하는 초유의 시도로 독재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만행이다.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집권 시절에 대법원장이 정부의 즉결 처형도 허용하는 범죄자 소탕전과 계엄 선포를 비판하다 탄핵당한 적이 있다. 두테르테는 그 대법원장이 지적했던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얼마 전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 재판을 받는 신세가 됐다. 철권 통치자가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사법부 때리기를 집권 가능성이 높은 제1당이 하고 있으니 이런 나라 망신도 없다.

민주당은 일명 ‘이재명 재판 정지법’ ‘4심제 허용법’과 함께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 100명으로 늘리는 대법원 재구성 법안도 내놓았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이라 하지만 정치학 용어로 ‘심판 매수’라 부르는 ‘사법부에 제 사람 심기’ 꼼수다. 근대 사법 체계의 핵심이 통치 권력과 사법 권력의 분리다. 민주당 법안이 통과되면 통치 권력이 입맛대로 사법부를 구성해 두 권력 간 분리가 안 되는 ‘원님 재판’ 시절로 퇴행할 우려가 크다. 경제는 인공지능(AI)으로 가자면서 사법 체계는 왜 조선시대로 돌아가자 하나.

국내 공론장에서 수도 없이 인용된 미국 하버드대 교수 2명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는 대법관 수 늘려 어용 판사로 채우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심판 매수’ 사례가 줄줄이 나온다.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이다. 차베스는 ‘사법개혁’이라며 모든 국가 기관 해산권을 요구했고 대법원은 다수결로 이를 받아줬다. 차베스는 대법원을 해산하고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려 ‘혁명적’ 측근들을 앉히고, 대법원장은 “법원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암살이든 자살이든 사법부가 죽는 건 마찬가지다. 이후 대법원이 정부에 불리한 판결을 하나도 내놓지 않은 덕에 차베스는 14년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책의 개정판에는 한국의 사법부 손보기 사례가 포함돼 세계적인 반면교사로 회자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후보의 사법 리스크가 삼권분립을 흔드는 국가 리스크로 커진 데는 이 후보 책임만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정당의 문지기’ 역할을 못 한 민주당 책임이 무겁다. 왜 선거 앞두고 재판을 하느냐고 따질 자격이 없다. 8개 사건에 대해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을 대선 후보로 선출한 건 민주당이다.

사법권 침해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법률 전문가들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 1호 헌법연구관으로 법제처장을 지낸 인사는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문제의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세계적 각광을 받자 대법관들이 자존심을 찾기 위해 퇴행적 판결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치도 선거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일갈했던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사는 총괄선대위원장인데 ‘민주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으로서는 충분히 할 말을 했다”고 두둔했다.

이들이야 캠프 사람들이라 치자. 헌법학회건 공법학회건 이번 사태에 대해 성명서 한 장 내지 않은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법대 교수들 몇 명이 국회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한다 해서 봤더니 ‘대법원장 사퇴, 대법관 수 대폭 증원’이라는 민주당과 똑같은 주장을 하다 끝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 사법부다. 이 후보는 “(사법부의)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면 고쳐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사법부에는 사법부로 향하는 권력의 총구를 막아낼 의지가 있는가. 이 후보의 출석 의무가 있는 재판들이 모조리 선거 이후로 미뤄졌는데 사법부가 ‘암살’을 피해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라 믿고 싶다.

이 후보는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 계엄권 통제 강화와 사법개혁을 통한 ‘내란 극복’, ‘K민주주의 위상 회복’을 내세웠다. 대통령의 어리석은 비상계엄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일 테지만 요즘 민주주의의 붕괴는 군을 앞세운 쿠데타가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 손으로 이뤄진다. 폭력을 내세운 ‘경성 내란’은 가시적이어서 경각심을 갖고 막아낼 수 있어도 합법과 다수결을 통한 ‘연성 내란’은 난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당한다. 민주주의는 총칼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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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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