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칼럼] 실용정부의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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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반복되는 공공기관 고위직 `논공행상` 관행
`실용` 앞세운 李정부에서도 곳곳서 낙하산 인사 잡음
권력실세 가깝다고 배제해선 안되지만, 기준 더 높아야
성과와 결과 중시하는 실용정부, 인사 원칙 분명해야

  • 등록 2026-03-26 오후 6:04:02

    수정 2026-03-26 오후 6:04:02

[이데일리 이정훈 논설실장] 법에서 독점적인 영업권이나 사업권을 보장 받아 경쟁이 필요없는데다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과 처우가 보장되는 덕에 흔히 ‘신(神)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의 기관장 자리는 역대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선거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의 대상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공공기관장 인선을 둘러싼 크고작은 잡음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법적 문제를 대리해 준 변호인 출신의 예금보험공사 사장,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인선은 낙하산 논란은 있었지만, 그나마 관련분야 전문성은 일정 수준 갖춘 인물들이었다.

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그러나 최근 들어 단행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인선과 한국지역난방공사 신임 사장 후보에 대한 단수 추천이나 한국석유관리원 비상임감사, 그리고 현재 최종 인선이 진행 중인 일부 공공기관장 인선 과정에서는 전문성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인사들이 선발되고 있다.

전세사기 뒷수습 과정에서 5년 사이 6조4000억원의 정부 자금을 받아 자본을 확충해 온 HUG는 자체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는 한편 100조원에 이르는 주택공급보증을 통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시장과 지방건설 경기 회복에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데도, 더불어민주당의 재선 출신인 최인호 전 의원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후보로 단수 추천돼 사실상 임명 수순을 밟고 있는 하동근 전 판교생태학습원장은 성남환경운동연합 창립대표 등을 지낸 환경운동가로 이 대통령은 물론이고 김현지 실장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정작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 발전소를 통해 전국 190만가구에 난방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난방공사를 이끌만한 에너지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는 게 문제다.

최근 석유관리원 비상임감사로 임명된 김필성 변호사도 대통령의 대장동 사건 변호인을 맡았고, 이후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법조계에서만 일해온 인물이다.

이뿐 아니라 한국가스기술공사나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몇몇 공공기관장 인선에서도 공개모집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에도 대통령이나 대통령비서실 고위인사들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인사들이 유력 후보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아직도 40곳 이상 공석으로 남은 공공기관장 자리는 지방선거 이후 채워질 거란 얘기도 무성하다.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30년 정통 경제관료였던 윤대희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신의 직장 CEO 일지’라는 책에서 “내게 공공기관장은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썼다. 관련분야 경제관료로서 정책을 입안하는 일을 수없이 했지만, 정부가 수립한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일은 너무도 달랐다는 고백이었다. 하물며 업무 전문성이 없는 공공기관장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실용’을 국정 운영 전면에 내세웠다. 이념보다 성과, 진영보다 결과를 앞세우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정책보다 먼저 인사에서 증명돼야 한다. 특히 정부가 수립한 정책을 현장에서 직접 집행함으로써 정부 재정이 효율적으로 쓰이게 하고, 정책수요자인 국민에게 효용감 있게 정책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인사는 더욱 더 엄정해야 한다. 권력실세와 가깝다고 배제돼선 안되겠지만, 그럴수록 잣대는 더 높아야 한다.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70%에 육박하며 취임 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지율이 높을수록 정부는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가 큰 지금이야말로 인사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할 때다. 실용은 구호가 아니라 기준과 결과로 입증돼야 한다. 공공기관 요직에 대한 인선에서부터 ‘누구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새 정부는 비로소 과거의 구태와 결별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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