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데이미언 허스트 특별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막을 올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답게 전시장 안팎으로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중이다. 사실 예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동시대적 신선함이 다소 퇴색한 현대미술 작가에게 33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공공 미술관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이 주된 논쟁거리였다.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가 제시한 ‘죽음’이라는 화두는 시대를 초월하며, 동시에 작품의 적절성과 제작 방식을 두고 벌어지는 찬반 논란 자체가 활발한 담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양질의 현대미술 전시를 부담 없는 금액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단연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최근 방문했을 때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수많은 이들이 작품에 몰입해 있는 풍경은 참 인상적이었다.
이쯤에서 데이미언 허스트처럼 시대의 아이콘 같은 작가의 삶이 궁금할지도 모른다. 칼럼의 주제(예술 한 잔)답게 ‘술’이라는 키워드로 그를 살펴봤다.
비뚤어진 애주가 : 취해버린 터너상
데이미언 허스트는 파격적인 행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그대로, 지독할 정도로 술을 탐닉했다. 1995년 그는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을 수상했으나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서도 완전히 취해버려 수상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받은 2만 파운드의 상금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당시의 그는 술을 음미하는 애주가가 아니었다.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시고 코카인까지 곁들였던 비뚤어진 애주가였다.
다행히도 현재의 그는 술을 멀리하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2002년으로, 그가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The Clash)의 조 스트러머 그리고 예술가 마이클 주프와 함께 밤샘 작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 9시쯤, 테이블 주변을 둘러보며 담배를 찾고 있던 그의 눈에 말보로 라이트 빈 갑이 일곱 개나 들어왔다. 140개비 모두 자신이 피운 담배였다. 그 길로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술까지 함께 끊어내며 방탕했던 과거와 작별했다.
약국에서 술을 판매하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야심가였다. 1998년 테이트 모던 전시 기간 중, 그는 자신의 미학을 투영한 ‘파머시(Pharmacy)’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열었다. 아스피린 모양의 의자와 약장 그리고 약국을 테마로 한 독특한 벽지가 특징이었다. 직원들은 프라다가 디자인한 수술복을 입고 볼타롤 지연제(Voltarol Retarding Agent), 러시아산 퀄루드(Russian Quaalude), 마취제 화합물(Anesthetic Compound)과 같은 파격적인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서빙했다.
하우스 와인의 이름은 ‘pH(수소이온농도지수)’ 였다. 이듬해 파머시는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약국’이라는 이름의 사용 문제로 영국 왕립 약학회와 논란을 일으킨다. 이후 '아미 챕(Army Chap, 약국의 철자를 바꿔 만든 이름)'에서 '파머시 레스토랑 앤 바(Pharmacy Restaurant and Bar)'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레스토랑은 2003년까지 운영됐다.
2016년, 데이미언 허스트는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를 오픈하며 파머시를 재탄생시켰다. 이때는 정통 영국 요리와 함께 보드카 브랜드 블랙 카우(Black Cow)를 활용한 칵테일을 제공했다. 블랙 카우는 유청(치즈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사용하여 만든 우유 보드카로, 1리터의 보드카를 만들기 위해 약 20리터의 우유가 사용된다. 이때는 시즌 1보다는 다소 점잖은 네이밍의 칵테일 ‘블랙 카우 보드카 마티니’와 '도싯 동키(The Dorset Donkey, 모스코뮬을 재해석한 칵테일)’을 제공했다. 하지만 야심찬 재도전 역시 2017년에 막을 내렸다. 데이미언 허스트에게도 냉혹한 요식업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주류 콜라보레이션 : 예술을 병에 담다
1.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
앱솔루트는 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라면 대부분 알 법한, 공격적이고 감각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한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다. 대표적인 마케팅 중 하나가 앱솔루트 아트(Absolut Art) 프로젝트다. 1986년 앤디 워홀을 시작으로 키스 해링, 에드 루샤, 루이스 브루주아 등의 거장들이 참여하여 앱솔루트의 시그니처 보틀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1998년, 자신의 대표작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를 통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포름 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 뱀상어의 사체를 넣은 작품으로, 앱솔루트와의 협업 작품에서는 시그니처 보틀이 대신 배치된 모습이 담겼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포름알데히드의 속성은 브랜드의 영속성을 증명하고 싶은 앱솔루트에게 더할 나위 없는 헌사였을 것이다.
2. 벡스(Beck’s)
독일의 맥주 브랜드 벡스 역시 오랫동안 현대미술을 후원해온 조력자다. 이들은 1985년부터 주요 행사와 전시를 기념하기 위해 예술가들에게 한정판 라벨 제작을 의뢰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1995년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으로 그 여정에 참여했다.
스팟 페인팅은 그가 1988년부터 선보인 작품으로, 동일한 크기의 다채로운 원들이 격자무늬로 배치된 작품이다. 작가의 고유한 손길 대신 기계적인 정확성을 선택한 이 작업은 앤디 워홀의 방식처럼 작품 자체의 기술보다 개념을 판매하는 현대미술의 속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죽하면, 그는 자신의 조수들의 작업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나를 위해 점을 그린 최고의 사람은 레이첼이었어. 그녀는 정말 훌륭해.”
이 시리즈의 정식 명칭은 ‘제약 회화(Pharmaceutical Paintings)’다.작품마다 LSD, 비소, 모르핀 같은 화합물이나 약품명이 붙여진 이유는 현대인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한 과학과 의학에 의지해 죽음을 유예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알약 같은 점들은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시스템을 상징하기도 한다. 벡스의 이 한정판 보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는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A)에도 소장되어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예술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 술병에 담았고, 레스토랑으로도 만들어 우리 삶의 영역에 의도적으로 침투해 왔다. 이번 특별전은 그가 걸어온 입체적인 예술적 행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최종적인 만족도와 평가는 전시장을 찾는 관람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5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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