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가성비 마케팅’에 주력하는 식품회사가 늘고 있다. 제품 포장지에 가성비 강조 문구를 넣거나, 주력 상품 가격을 동결하는 식이다. 오랜 내수 침체로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를 잡기 위해서다. 최근 유통사들이 초저가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전면에 앞세우자 이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다음달 초코파이, 포카칩 등 주요 제품 10여 개 포장지에 중량 등을 강조하는 문구를 추가할 예정이다. 소비자들이 오리온과 다른 회사 제품의 가성비를 손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지난 10일 열린 최고경영자 주관 간담회에서 “지난 10년간 가격을 두 번밖에 올리지 않아 경쟁사 동종 제품보다 10~30% 저렴한데, 오리온 제품의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포장지 교체를 통해 가성비를 강조하면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오리온의 주요 제품 가격은 최근 거의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렸다. 포카칩의 ㎏당 가격은 2023년 1만4848원에서 지난해 1만4686원으로 1%가량 낮아졌고, 초코파이 또한 5904원에서 5804원으로 100원 내려갔다. 예감, 고소미 등 가격을 올린 상품도 인상폭은 1% 미만에 불과했다. 오리온은 g당 가격이 낮은 벌크 제품(낱개 포장을 대용량으로 묶은 제품)도 늘릴 계획이다. 코스트코, 트레이스더스 등 창고형 할인점에서 잘 팔리기 때문이다.
오리온이 가성비 마케팅을 강화하는 건 내수 위축 때문이다. 오리온은 지난해 4분기 중국(21.8%), 베트남(11.3%), 러시아(35.4%) 등 해외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매출 증가를 이뤄냈지만, 한국에선 1.5% ‘역성장’했다.
삼양식품도 올해 불닭볶음면, 불닭소스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동결하기로 했다. 농심은 지난달부터 신라면, 새우깡 등 라면·스낵류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지만, 나머지 39개는 올해 말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식품사들이 잇단 가격 인상으로 ‘물가 상승 주범’으로 몰린 데다, 실제 소비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가 상승 압박을 버티다 못해 출고가를 올린 것인데 ‘그리드플레이션’(기업 탐욕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비치고 있다”며 “마케팅을 통해 이런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제(제조사)·판(판매사) 간 경쟁’ 구도도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식품사들이 원가 압박에 제품 가격을 줄줄이 올리는 틈을 타 편의점,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가성비 자체 브랜드(PB)를 앞세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GS리테일의 ‘리얼프라이스’, CU ‘득템’, 이마트의 ‘노브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PB 제품은 가성비를 무기로 식품사를 위협하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과자 브랜드 부동의 1위였던 농심 ‘새우깡’의 지난해 소매점 매출이 전년보다 8.33% 줄어든 1007억원을 기록했다. 대형마트·편의점들의 PB 상품 매출 합계인 ‘스토어 브랜드’(1034억원)에 처음으로 1위를 뺏겼다. 오리온 ‘포카칩’과 롯데웰푸드 ‘꼬깔콘’도 각각 3, 4위로 내려갔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