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주변에 90세를 넘은 분은 수두룩하다. 대략 60세에 정년을 맞는다고 해도 아직 그 절반 이상의 삶이 남을 수 있는 시대다. 나이 든 작곡가들이 이룩한 걸작도 있을까?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찾아보았다.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진 뒤 40대가 되어서는 미식을 비롯한 취미에 골몰했다. 말년에 그는 본업이라기보다는 거의 취미로 소품들을 썼고 지인들만 모인 파리 근교의 살롱에서 발표했다. 65세부터 죽기 직전인 76세까지 쓴 이 곡들을 로시니는 ‘노년의 과오(P´ech´es de vieillesse)’라고 불렀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죽기 전해에 84세로 관현악 반주가 붙은 가곡집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작곡했다. 가장 놀라운 사례는 미국 작곡가 엘리엇 카터다. 2012년 103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죽기 직전까지 작곡을 이어나갔다.때로 긴 창작 기간은 시대와 불화를 빚기도 한다. 카를 라이네케가 1908년 84세의 나이로 플루트 협주곡 ‘운디네’를 발표했을 때 이 협주곡은 ‘한 세대 전 브람스가 플루트 협주곡을 쓴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이 곡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사랑받는 곡으로 남았다. 이 곡은 13일 데이비드 이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가 플루티스트 조성현 협연으로 이 악단 정기연주회에서 연주한다.
연주가들로 시선을 옮겨 보면 어떨까? 3중주단 ‘보자르 트리오’ 멤버로 친숙한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는 95세까지 녹음 활동을 계속했고 이후에도 연주회 무대에 서다 2023년 100세로 타계했다. 지휘자로는 지난해 ‘97세 거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를 이 코너에 소개한 바 있다. 올해엔 98세 현역이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미국의 유력 언론이 미국 내 직업을 3000여 가지로 분류해 각 직종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바 있다. 최고 장수 직업 중 하나가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이유로는 ‘딱 부러지는 은퇴 시점이 없이 컨디션에 맞춰 적당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이어나간다’ ‘지역사회의 관심을 받는다’ 등을 꼽았다. 신문기자의 수명은 최하위 그룹에 위치했다. 몸이 악기인 성악가들은 어떨까? 기자는 2016년 테너(당시엔 바리톤) 플라시도 도밍고, 바리톤 레오 누치, 소프라노 조반나 카솔라의 노래를 듣고 경탄한 일을 이 코너에서 전했다. 그들의 나이는 각각 75세, 74세, 71세였다. 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낸 바리톤 박수길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기타리스트 김우재 반주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콘서트에서 ‘눈물의 비’ 등 여섯 곡을 노래한다. 그는 올해 84세다.음악에 대해 글 쓰는 사람의 평균수명도 알 수 있을까? 찾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이나 상임지휘에서 은퇴한 지휘자가 적당한 활동을 이어가듯이, 지속적으로 적당한 정신적 노동을 이어간다면 행복한 ‘롱테일’ 만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장편소설 ‘불멸’(1988년)에서 이렇게 적었다. ‘큰 불멸과 작은 불멸이 있다. 작은 불멸은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추억, 큰 불멸은 생전에 그를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
지난 시대에 큰 불멸은 역사에 분명한 흔적을 남긴 위인이나 대가에게만 가능했다. 그러나 정보가 다매체 다품종화된 시대엔 개인적으로 몰랐던 사람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큰 불멸’도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됐다. 내가 느끼고 공부하고 밝혀낸 일들이 후세에 검색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작으나마 쿤데라의 ‘큰 추억’이 말하는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지만 큰 불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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