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신장학회(ERA25) 개막…“신장질환 분류체계 변화 예고"

1 week ago 8

제61회 유럽신장학회(ERA)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4일 개막했다. 학회가 열린 오스트리아 센터 비엔나 1층 전경. 이우상 기자

제61회 유럽신장학회(ERA)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4일 개막했다. 학회가 열린 오스트리아 센터 비엔나 1층 전경. 이우상 기자

신장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학회로 꼽히는 제61회 유럽신장학회(ERA 25)가 4일(현지 시간) 공식 개막했다. 학회를 여는 첫 강연(Opening Lecture)에서는 그간 증상 위주였던 신장질환 분류를, 발병 원인에 따라 다시 정립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환자 맞춤형 치료의 정확도를 높이고, 난치성 질환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현장 관계들의 주목을 받았다.

ERA는 전 세계 110개국 이상에서 신장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신장질환 학술대회다. 올해 행사에는 약 9000명 이상 참가자가 등록했으며, 270개 이상의 기업 및 단체가 전시 부스와 심포지엄 등을 통해 최신 기술과 치료제를 선보인다.

병명을 넘어 병인으로, 포도세포병증 재정의

파올라 로마냐니 이탈리아 피렌체대 의대 교수가 ‘포도세포병증의 새로운 분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파올라 로마냐니 이탈리아 피렌체대 의대 교수가 ‘포도세포병증의 새로운 분류’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첫 강연의 연사로는 파올라 로마냐니 이탈리아 피렌체대 의대 (Paola Romagnani) 교수가 연단에 올라 ‘포도세포병증의 새로운 분류(New classification for podocytopathies)’를 주제로 발표했다.

포도세포는 사구체 여과막의 핵심 세포로, 해당 발표는 신장질환의 진단 및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포도세포병증(podocytopathy)은 사구체 여과막을 구성하는 포도세포(podocyte)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군이다. 단백뇨 및 신증후군의 주요 병리기전으로 작용하며, 미세변화질환(MCD), 국소분절성사구체경화증(FSGS) 등 다양한 사구체질환의 형태로 나타난다.

포도세포병증의 발병원인은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적 돌연변이(예: NPHS1, NPHS2 유전자), 자가면역 반응, 약물 독성, 감염(예: HIV), 대사 이상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부는 이차성(FSGS secondary)으로 발현되기도 하며, 특정 유전자 이상은 스테로이드 저항성과의 관련성도 의심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임상 현장에서는 병태생리보다는 조직학적 병리소견 중심의 분류에 의존하고 있어, 진단의 정확성과 치료 전략의 일관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동일한 병리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 간에도 발병 원인과 치료 반응성은 상이해 치료제에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을 겪는 난치성 환자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전성 FSGS 등은 면역억제제 치료에 거의 반응하지 않아 비효율적 처방이 반복되는 문제도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로마냐니 교수는 “우리는 지금까지 MCD, FSGS, 붕괴성 사구체병증(CG)와 같은 명칭을 마치 독립된 질환처럼 다뤄왔지만, 이들은 사실상 포도세포 손상의 정도와 회복 가능성에 따라 나타나는 병변일 뿐”이라며,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 선택을 위해서는 병리명이 아닌 병인을 중심으로 재분류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강연에서 제시된 새로운 분류 체계는 자가면역(autoimmune), 유전(genetic), 환경 적응(adaptive), 감염(infectious), 독성(toxic), 단클론성(monoclonal) 등 여섯 가지 병인에 따라 포도세포병증을 나누는 방식이다. 환자의 병력, 가족력, 감염 이력, 유전자 검사를 바탕으로 보다 정밀하게 원인을 진단하고, 불필요한 면역억제제 사용을 줄이며 예후 예측의 정확도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골자다.

실제 발표에서는 병인 유형에 따른 치료 반응의 차이도 함께 제시됐다. 예컨대 자가면역성 포도세포병증 환자(anti-slit 양성군)는 면역억제제 치료에 대해 13명 중 12명이 완전 관해에 도달하는 높은 반응률을 보였지만, 유전성 병인의 환자군은 치료 반응이 낮고 예후도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감염형이나 독성형 환자는 원인 자극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아, 병인에 따른 치료 전략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마냐니 교수는 “이제는 신장질환 치료에 있어 조직 소견만이 아닌, 환자의 유전체 정보, 감염 이력, 자가항체 유무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진단에 반영해야 한다”며 “새로운 분류 체계는 정밀 신장학 시대의 출발점이자, 궁극적으로 환자 맞춤 치료의 실현을 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ERA25 전시 부스에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비롯해 아스트라제네카, 노보노디스크, 보령, 일동제약, 한국BMS제약, GSK, 얀센, 오츠카 등 국내외 제약사들이 대거 참여해 신장질환 치료제와 관련 기술을 선보였다.

빈=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