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세대 소비자 중심으로 슬림한 실루엣의 ‘하이틴 패션’에 대한 열기가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패션업계에서 신체 다양성을 강조한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흐름이 힘을 잃으면서 국내에도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경향이 패션 시장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젠지(Z세대) 소비자 사이에서 하이틴 패션이 지속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젊은층의 패션 성지로 떠오른 서울 성수동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성수 연무장길 일대에는 미국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 브랜디멜빌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브랜드 섭듀드, 뉴뉴걸즈 등 하이틴 캐주얼 브랜드들이 잇따라 문을 열며 1020세대 소비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주변에 대형 패션 브랜드와 편집숍이 밀집해 소비 수요가 분산될 수 있는 환경이지만 해당 매장은 평일에도 젊은 소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 브랜드는 미국·유럽 하이틴 드라마에서 튀어나온 듯한 소녀 감성을 앞세운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한다. 파스텔톤 색감에 잔꽃무늬, 레이스, 리본 디테일 등을 포인트로 활용하며 전체적으로 슬림한 실루엣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제품 구성도 다양한 사이즈를 아우르기보다는 특정 체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브랜디멜빌은 전 세계적으로 한 가지 사이즈만 판매하는 ‘원 사이즈’ 정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해당 브랜드가 지난해 1월 국내에 상륙한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마른 체형 소비자들이 착용 후기를 공유하며 일종의 챌린지처럼 소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달 성수동에 문을 연 섭듀드도 마찬가지다. 브랜디멜빌보다는 선택 폭이 넓지만, 전반적으로 XS에서 M 사이의 작은 사이즈가 중심이다. 제품군 역시 핫팬츠, 크롭티, 로우라이즈 데님 등 체형이 드러나는 실루엣이 주를 이룬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국내외 패션 시장 변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해외 패션업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사랑하는 보디 ‘보디 포지티브’ 흐름이 확산했다. 당시 유명 패션 브랜드들은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기용하며 포용성을 강조했고, 미국 팝가수 리조 등 유명 인사들도 자기 몸을 긍정하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내며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위고비, 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대중화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개인의 의지 영역으로 여겨졌던 체형 관리가 약물을 통해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처럼 인식되면서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재확산했다는 설명. 오프라 윈프리, 일론 머스크 등 해외 유명 인사들도 해당 약물을 통해 체중을 감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슬림한 체형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빠르게 커졌다. 글로벌 패션 시장을 주도하던 보디 포지티브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마른 체형이 다시 미의 기준으로 부상했고, 몸매를 드러내는 하이틴 패션 트렌드가 이 같은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 확산이 외모에 대한 강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GLP-1 계열 약물의 대중화가 식이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료진 우려를 소개하며 “(해당 약물이) 마른 몸을 미화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심리적 압박을 심화시킨다”고 전했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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