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통’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당장 대미 수출 충격도 문제지만… 中-베트남 고관세로 간접타격 우려
해외 투자자들 “지금 韓 중대 갈림길”… 불안 지속 시 국가신인도 하락할 수도
尹 정부, 목표는 좋았는데 실천을 못해… 우리 경제 특유의 회복력 발휘해야
―트럼프 관세 폭탄 강도가 상당하다.
“그렇다. 예상보다 강력하다. 일단 직접적인 충격으로는 우리 최대 수출 시장인 대미 수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간접적인 충격도 크다. 중국에 대한 관세가 기존 20%를 합해 54%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 시절 중국에 60%까지 관세를 매기겠다는 말을 했는데 벌써 그 수준에 근접했다. 안 그래도 내수가 둔화된 중국 경제가 더 위축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여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또 중국이 자국에서 안 팔리는 상품을 한국 등에 저가로 밀어내는 행위가 더 거세질 수 있다. 게다가 베트남에 대한 관세율도 매우 높은데 이로 인해 국내 대기업들의 생산 기지가 상당히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지금까지는 국정 공백기였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와 직접 소통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젠 민관정이 한 팀으로 나서야 한다. 트럼프는 딜(협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번 관세도 조정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의 전략 산업을 활용해 협상을 잘해야 한다. 조선업이 좋은 사례다. 미국은 전체적으로 산업 구조가 첨단 기술 쪽으로 옮겨가면서 조선업 같은 전통 제조업이 밀리고 있다. 미국-중국 중심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과 이런 협상을 잘하기 위해선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신뢰받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무리 우리가 산업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안정된 정치 리더십 없이는 어렵다고 본다. 일본을 봐라. 일본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신뢰하는 나라다 보니 우방국들의 군함 건조 분야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우리 산업이 해외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고 장점을 살려 나가려면 정부가 뒤에서 잘 받쳐주고 믿음을 줘야 한다. 또 현대차가 얼마, 삼성이 얼마,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미국에 투자 발표를 하기보다는 정부가 이들을 모아 패키지로 투자 보따리를 꾸려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트럼프발 관세 폭풍이 1930년대 대공황 때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우선 미국 우선주의 기조, 관세를 무기로 삼았다는 것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 더 중요하다. 대공황 때는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졌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관세라는 충격적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홀로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경제가 좋은 상황이라는 게 다르다.”
―그러면 미국은 왜 관세 카드를 들고나온 걸까.
“트럼프는 관세로 글로벌 지정학적 구도를 재편하려는 본심을 갖고 있다. 이번 관세는 궁극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70년대 닉슨 대통령―키신저 국무장관 시절 미국이 중국과 대화를 시작한 진짜 속내는 중국을 자유시장 진영으로 끌어들여 당시 최대 적성국인 소련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1등은 항상 2등만 신경을 쓴다. 이번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꾸 러시아 편을 드는 것도 러시아를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이 러시아, 북한, 이란 등과 밀착하는 것은 자신이 의도하는 세계 구도와는 맞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이 중국을 옥죄면 옥죌수록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서 한국이 이중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1930년대 대공황은 보호무역주의가 촉발했지만 이후에는 자유무역 기조가 역사의 큰 흐름을 차지했다. 자유무역이 각국의 공동 번영에 기여하고, 보호무역이 결국 모두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다. 지금 트럼프의 보호주의도 오래 못 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서 중간선거를 승리한 대통령은 흔치 않다. 트럼프가 의회의 전폭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2년밖에 안 남았을 수도 있다. 한 번의 선거 결과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우리 기업은 자유무역이든 보호무역이든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본연의 힘을 길러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나.
“그동안 헌재 결정이 미뤄져서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며 정치 사회적 불안이 커진 게 우리 경제에 안 좋았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헌재 결정으로 ‘한 스텝’은 밟은 것이다. 아직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계엄 사태로 빚어졌던 전례 없는 혼란 상황이 이제 해결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 아닌가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든다.”
―그래도 위기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전례 없이 도전적인 상황인 이유는 국내 여건이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 트럼프발 관세 폭풍이 몰아쳐서 내우외환이 생겼다는 것이다. JP모건 등 일부 투자은행은 이제 우리 성장률을 0%대로 보고 있다. 심지어 역성장 가능성까지도 나오고 있다. 국민과 정치권이 단합해서 극복해야 한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조기 극복을 할 수 있었던 건, 적어도 극복 과정에서 국민들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정치 혼란이 경제에 미친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정치적 혼란, 리더십 공백이라는 것이 외부 환경이 급변할 때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트럼프 2기가 들어섰지만 우리는 계엄 사태로 인해 즉각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또 노동-교육 개혁 등 전반적인 개혁 과제의 성과가 미진했다. 증시도 바닥권을 헤맸다. 배당이나 지배구조도 중요하지만 기업 가치나 주가 결정에 가장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치 환경이다. 정치 체제 안정성이 흔들리면 아무리 밸류업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외국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최대 요인으로 정치 불안을 꼽는다.”
―경제가 다시 안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헌재 판단을 우선 겸허하게 수용해야 된다.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해외에서는 정치 불안이 나타나고 핵심 산업의 경쟁력도 흔들리는 지금 한국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보고 있다. 내가 평소 교류하는 해외 인사들은 한국의 상황을 매우 진지하게 걱정한다. 국민들의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앞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만일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국론 분열이 심화된다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 같은 상황도 올 수 있다. 국가신인도 평가에는 국가부채나 단기외채, 외환보유액 같은 지표도 중요하지만, 큰 틀에서 그 나라의 리더십이 바로 서 있는지, 책임감 있는 정치인이 많이 포진해 있는지 같은 주관적 요인 역시 매우 중요하다. 해외 투자기관과 오랜 접촉을 통해 느껴온 바다.”
“정책 목표는 나름 잘 설정했지만 제대로 실천한 게 없어서 문제였다. 노동 의료 교육 등 구조 개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건 맞는 방향이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같은 것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이런 과도기적 대행 체제 상황에선 추세가 반전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외교적으로 보면 일본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대단히 용기 있고 평가받을 만한 일이었다. 다음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지 간에 과거를 딛고 미래를 내다본다는 생각에서 동북아 안보의 버팀목인 일본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잘 유지해야 된다.”
―그래도 막판에 연금 개혁에선 진전이 있었다.
“이번 모수 개혁은 비록 일부 계층에서 반대하긴 하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다. 이번 합의로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가 커지게 되면 그만큼 각종 부문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커질 수 있다. 이는 금융시장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다.”
―우리 경제가 이번 탄핵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과거에도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지만 우리 경제는 항상 회복력이 강했다. 그 회복력을 이번에 다시 보여주고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번 탄핵 사태가 이제 국가 경제를 턴어라운드시키고 국민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76) |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과 교수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초대 금융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 |
유재동 산업1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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