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참사 등을 기술 재난으로 정의했다. 기술 재난은 자연 재난과 무엇이 다른가.
“자연 재난은 봄 가뭄, 여름 홍수처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하늘 탓밖에 할 수 없으니 재난 복구 과정에서 공동체가 끈끈해지기도 한다. 기술 재난은 이와 정반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화학 물질을 규제했지만 배가 가라앉고 비행기가 추락했다. 예측 불가능하다. 사람이 만들고 운용했던 기술로 발생한 기술 재난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기술의 복잡성으로 그 책임 소재와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기 어렵고, 그 결과 공동체에 균열이 일어난다.”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기술 재난인가.“사고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고, 블랙박스도 해독되지 않아 속단하기 어렵지만 전형적인 기술 재난으로 보인다. 기술 재난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스위스 치즈 모델’이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를 쌓을 때 구멍 하나가 일렬로 맞는 드문 순간이 있다. 서로 연관성이 없고, 사고 확률이 낮은 취약성이 결합하는 순간 대형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이에 빗댄 것이다. 철새 도래지에 지어진 공항, 조류 충돌 예방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 로컬라이저(방향 안내 시설)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 등 구조적인 취약성이 결합한 순간, 179명 사망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조류 충돌이 일차적인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영국 히스로 공항처럼 외국에선 인근 호수에 ‘셰이드볼’(Shade Ball·검은색 플라스틱 공)을 뿌려둔다. 새 떼가 앉지 못하도록 해 쫓아내는 역할을 한다. 무안공항 인근은 철새 보호 지역이라 가장 간단한 ‘셰이드볼’ 방법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조류 충돌 예방 인력이라도 충분했어야 한다. 사고 당시 현장 근무 인력은 1명뿐이었다고 한다. 적자 공항이라 인력을 줄였는데 근무 시간을 무작정 늘릴 순 없으니 최소한의 인력만 투입됐을 것이다. 법령 위반은 아니라지만 로컬라이저가 안전 구역에서 몇 m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더구나 콘크리트 둔덕이었다. 조류와 충돌했다고 반드시 이런 참사로 이어지진 않는다. 기술적인 취약성에 인적 오류가 결합해 벌어진 참사다.”
―공항 설계나 여객기 결함 같은 기술적 오류에 힘이 실리는데…. 어떤 인적 오류가 있었나.“조류 충돌은 무안공항에서 6년간 10번 있었다. 자꾸 반복되니 ‘별일 아닌가’라며 무시하는 ‘일탈의 정상화’가 발생했거나, 이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는 문제를 제기했으나 윗선에서 묵살됐을 가능성이 있다. 당초 환경 단체에서 철새 도래지라는 이유로 공항 위치로 부적합하다고도 했다.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가 기술적 오류와 결합하면 재앙적인 참사가 발생한다.”
―기술 재난은 그 피해도 크지만 회복 과정에서 공동체를 분열시킨다고 했다.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피해를 입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느린 재난’이 특히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초기 옥시 등 기업에서 전문가를 고용해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 법원이 해당 보고서를 채택하며 재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그사이 기업은 합의금을 제안하며 무마하려고 했고, 이는 유가족 사이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자식을 잃은 참척의 고통, 내 손으로 살균제를 샀다는 죄책감, 거대 기업과 싸우는 무력감에 시달리던 피해자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됐다. 온 국민이 애도했던 세월호 참사는 정권의 안위라는 정치적 이슈로 번지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다만, 무안공항 참사는 그런 징후가 덜한 것 같다. 국가 기관이 혐오 발언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밝혔고, 포털 댓글 창에도 주의를 당부하는 경고가 바로 떴다. 과거 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해진 것 아닐까. 비상계엄 정국이 이슈 블랙홀이 된 이유도 있는 것 같다.”
―기술 재난이 공동체의 분열을 초래한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나.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지는 것이 첫걸음이다. 유가족에게 공정하다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외부 전문가로 꾸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무안 제주항공 사고조사위원회에 국토교통부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데 이는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우려스럽다. 로컬라이저만 해도 국토부는 안전 구역 밖이므로 규정 위반은 아니라고 한다. 반면, 외국 전문가는 공항에 있어선 안 될 콘크리트 설치물이라고 한다. 이런데 유가족이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수긍할 수 있겠나.”
―역대 참사의 조사가 실패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가 왜 일어났고, 구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내놓고 우리 사회가 그 서사를 공유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10년 동안 조사가 이뤄졌지만 내력설, 외력설을 반박할 기술적 분석, 책임의 크기를 가리는 사법적 판단에만 치우쳐 납득할 만한 서사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니 음모론이 자꾸 창궐한다.”
―검경도 수사를 하지 않았나.
“세월호는 사고 원인이 전부 밝혀지기 전에 재판이 끝나버렸다. 나중에 해경의 윗선에도 책임이 있을 법한 그런 증거들이 등장하는데도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처벌하지 못했다. 조사보다 수사가 앞서다 보니 형사 처벌만 피하면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책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제도적인 변화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를 예로 우리 사회가 공유할 서사를 만들어 본다면….
“세월호는 구조 변경으로 복원성이 취약한 배였는데 과적을 하고 출항했다. 고박이 풀린 화물이 쏟아지면서 배가 45도 기울었고 환기구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닫혀 있어야 할 수밀문까지 열려 있어서 1시간 반 만에 배가 90도로 기울었다. 선장과 선원들은 먼저 도망쳤다. 그 바람에 배에 대한 정보와 대형선 구조 경험이 없던 해경은 밧줄을 던지고 구명보트를 띄워 배에서 탈출한 사람만 건져 올렸다. 이에 앞서 뇌물을 받고 운항 허가를 내준 관리·감독기관, 배가 자꾸 기운다는 선원들의 보고를 무시한 선사, 구조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안일하게 판단한 해경 등이 있었다. 그간 축적된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서사이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동의할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를 공유하지 못하면 우리는 304명이 희생된 참혹한 재난으로부터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다.”
―기술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기술 재난의 특징은 ‘책임의 파편화’ ‘조직된 무책임’으로 설명된다. 거대한 관료제와 복잡한 기술 체계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내 할 일만 또박또박 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에 구조적인 취약성이 있는지 민감성을 갖고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징조가 보고됐을 때 경청하는 조직 문화도 중요하다. 가습기 살균제만 해도 ‘써 보니까 목이 아프고 이상하다’는 소비자 불만이 접수됐고, 연구 기관에서 ‘살생 물질은 따로 다뤄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참사를 겪은 공동체의 회복을 도우려면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서 보듯이 참사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슬퍼하고,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잊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성수대교 추모비는 강변북로 아래 숨겨져 있고, 대구 지하철 추모 공원은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운영된다. 가습기 살균제, 세월호, 코로나19 팬데믹 등과 관련한 제대로 된 백서도 없다. 추모비나 추모 공원처럼 영속적인 시설을 만들고, 추모제처럼 희생자의 넋을 기리며 서로 연대하는 의식이 필요하다. 기술재난연구센터 같은 공신력 있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제안한다. 이번 사고로 전국에 있는 로컬라이저를 점검하고, 단단한 구조물을 제거한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희생에 빚을 진 채 조금 더 안전해진 세상에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과거보다 조금 더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힘든 싸움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난을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우리 모두는 재난 공동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64) |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2015년 한국과학사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과학기술과 사회 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학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의 재난을 연구한다. |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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