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 경제학자. 스리랑카 출신의 스위스 국적 영화 제작자와 동성 결혼한 레즈비언.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46)의 면모로 그의 극우 정치 성향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반(反)이민, 반 EU, 친(親) 러시아 기조를 앞세운 AfD는 다음 달 23일 독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2위(22%)를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선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 여전히 극우에 부정적인 여론이 강한 독일에서 독특한 이력을 갖춘 엘리트 여성의 이미지를 앞세운 바이델 대표가 AfD의 확장을 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서독에서 태어난 바이델은 졸업 후 1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이후 중국 연금제도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중국에도 잠시 체류했다.
20여년 전 바이델과 골드만삭스에서 함께 일했던 짐 딜워스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바이델이 당시 극우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바이델이 AfD에 입당할 당시 “(중도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에서 20년은 걸릴 일을 AfD는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바이델은 “커리어를 위해 당을 선택하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했다.스리랑카 출신의 스위스 영화제작자 여성과 결혼한 점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아들 두 명을 입양해 스위스에 거주 중이다. AfD가 지향하는 ‘이성애자 부부’ 중심 가족관과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바이델은 “나는 퀴어(queer·성소수자를 지칭)가 아니다. 20년 동안 알고 지낸 여성과 결혼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할아버지 한스 바이델이 히틀러가 직접 임명한 나치의 고위 재판관이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바이델은 이에 대해 자신은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다.
FT는 바이델이 총리 후보에 선출된 것은 극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한 AfD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2018년 의회 연설 중 이민자들을 “부르카, 스카프를 착용한 소녀들과 칼잡이 남성들”이라고 묘사하는 등 수년째 논쟁적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바이델은 9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의 온라인 라이브 대담에서 “히틀러는 공산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발언해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11일 전당대회에서는 ‘독일 국경 봉쇄 및 대규모 외국인 추방’이라는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제안하며 “재이주(remigration)”를 언급했고, ‘유럽연합(EU)·유로존 탈퇴’ 주장도 거듭 제기했다. 집권 사회민주당의 라스 클링바일 대표는 바이델을 “양의 탈을 쓴 늑대”에 비유했다.주요 정당들이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고 있어 이번 총선에서 그가 총리에 오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기존 정당들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AfD는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FT는 “그들은 이미 2029년에 예정된 차기 총선을 바라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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