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본격적으로 현실화자 주요 은행들은 뉴욕증시에서 폭락을 보인 10일(현지시간) 전부터 경기 침체 확률을 올려왔다. 미국의 최근 경제 지표들이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가운데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까지 나타날 우려가 커지면서다.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경우 미국 정부 혹은 중앙은행(Fed)의 정책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침체 확률 올리는 월가
트럼프 정부가 관세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주요 은행들의 경제분석팀들은 경기 침체 확률에 대한 예측치를 올리거나 미국 경제의 성장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0일(현지시간) 2025년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얀 하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고객에 보낸 메모에서 “무역 정책 관련 우리의 가정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했고, 행정부가 관세로 인한 단기적 경제 약세에 대한 기대를 관리하고 있다”며 성장 전망을 이처럼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15%에서 20%로 올렸다. 골드만삭스 측은 “트럼프 행정부가 훨씬 더 나쁜 (경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전념한다면 침체 예측치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JP모간 체이스는 올해 경기 침체 위험을 연초 30%로 내다봤지만 최근 40%로 상향 조정했다. JP모간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극단적인 미국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올해 경기침체에 빠질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리서치 업체 야데니 리서치 또한 “지난 주에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이 20%에서 35%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올렸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실질 GDP 증가율이 1.5%, 2026년 1.2%로 이전 추정치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위험한 美 경제 지표
월가 주요 은행들이 이처럼 미국 경제를 전망하는 것은 관세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나타난 각종 경제 지표에서 심상찮은 추세가 보이기 시작해서다. 특히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에서 경기 둔화 징조가 두드러진다.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는 최근 2월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가 98.3(1985년=100 기준)으로, 1월 대비 7포인트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다우존스 전망치(102.3)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으로, 작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낙폭의 경우엔 2021년 8월 이후 월간 기준 최대치다.
미시간대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경제 신뢰도를 반영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64.7로 1월(71.7)보다 7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1월 소매 판매도 7239억달러(계절조정 반영)로 전월 대비 0.9% 감소했다. 2023년 3월(-1.1%) 후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예상치(-0.2%)를 훨씬 웃도는 감소 폭이다.
“S&P500, 4200 갈 수도”
월가는 S&P 500이 지난해 기록한 약 24%의 상승률만큼은 아니더라도 연간 평균 상승률만큼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중 가장 낙관적으로 전망한 오펜하이머는 올해 말 S&P 500이 7100까지 도달해 약 20%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단순한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관세 부과 자체에 목적이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S&P500 약세론이 급부상했다. 리서치 업체 BCA리서치가 대표적이다. BCA리서치의 글로벌 수석 전략간 피터 베레진은 S&P500이 4200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베레진은 주가수익비율(PER)이 현재 21에서 17로 떨어지고, 기업 이익 전망이 10% 감소하는 것을 전제로 깔았다. 베레진은 “미국 경제가 이미 경기 침체에 접어들었을 확률은 50%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경기 침체가 3월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편 백악관 당국자는 이날 주가 급락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말에 대한 답변 성명에서 “주식 시장의 동물적인 감각과 우리가 업계 및 업계 리더들로부터 실질적으로 파악하는바 사이에는 강한 차이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에 있어 후자가 확실히 전자에 비해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등 경제 정책이 단기적으로 증시에 충격을 안기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으로 풀이된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