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반도체법 조속 통과를”
유일호 “예산안 처리가 최우선”
전광우 “재정 적극 역할해야”
신제윤 “한미동맹 채널 강화를”
긴급경제장관회의 공동성명
“해외 불안 달래는게 급선”
계엄사태와 탄핵정국으로 한국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가뜩이나 역대 최장기간 소비 역성장을 기록하고 건설경기 한파로 서민 생계와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 투자도 얼어붙으면서 성장동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총체적 복합위기 속에서 내년 성장률은 1%대 추락이 예상되고 잠재성장률마저 곤두박질칠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국정마비 조짐에 내년 정부 살림살이인 예산안조차 오리무중이고 각종 민생법안 처리도 안갯속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은 8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대외신인도 확보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최악의 경우 국가신용등급 강등 시 후폭풍은 가늠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이날 전직 고위 경제관료들은 매일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탄핵 정국 속에서도 국회가 내년 예산안부터 빨리 처리해 재정 집행에 공백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는 정치, 문화, 사회와 모두 연결돼 있어 정치가 질곡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는 잘 돌아갈 수가 없다”며 “트럼프 재등장 등 대외불안까지 합쳐 한국 경제는 굉장한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윤 전 장관은 “경제 안정을 위해서는 야당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예산부터 원점에서 다시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 677조원 중 야당은 4조원을 깎아 사상 초유의 감액예산안 국회 처리를 시도하다 탄핵 정국을 맞았다.
윤 전 장관은 “전 세계가 반도체 국가대항전을 벌이고 있다”며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면 한국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에 주52시간 예외를 허용하는 법안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경제사령탑을 맡았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도 내년 예산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유 전 부총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지도자와 정치 세력들이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예산이야 말로 계엄 사태와 별개로 여야가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 전 부총리는 현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여야 합의로 예산을 연내 조속히 처리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예산 처리는 추락 위기에 놓인 대외신인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가시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초대 금융위원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제일 위험한 게 무정부 상태”라며 “우리 내부 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야당도 한목소리로 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이사장은 “높은 파도에 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 이사장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이사장은 “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이슈가 중장기적으로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요소가 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며 “지금 당장 신용평가사들이 심각한 상황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계엄 사태로 균열을 보이는 한미 동맹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 전 위원장은 “제일 중요한 문제는 한미 간 균열”이라며 “이른 시일 안에 미국에 특사를 보내 동맹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긴급경제관계장관회의서도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의 불안감을 달래는 게 급선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장관들은 “국제 신용평가사들과 직접 만나고, 국제금융 협력 대사를 국제기구와 주요국에 파견하겠다”며 “해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경제 설명회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위기 상황인 만큼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 이사장은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나라 경제가 살아야 재정건전성도 회복되고 양극화 해소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