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와 AI는 같은 답을 말했다…“작은 정부보다 실력있는 정부” [경제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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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와 AI는 같은 답을 말했다…“작은 정부보다 실력있는 정부” [경제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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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자 1997년 외환위기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지금 한국경제는 정말 그때만큼 위험한가. ‘경제실록’ 첫 회는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과장으로 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썼던 변양호 VIG 고문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담았다.

그는 관료로서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고, 이후 보고펀드를 세워 민간의 눈으로 한국경제를 다시 관찰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1997년 위기의 구조와 2026년 한국경제의 위험을 살펴본다. 2회는 ‘우리는 왜 외환위기를 막지 못했나’에 초점을 맞췄다.

1997년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을 ‘코리아 인코퍼레이티드’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한국 주식회사’가 된다. 당시 한국경제에서 정부와 재벌, 금융기관이 하나의 거대한 회사처럼 움직이며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작동 방식은 이랬다. 먼저 정부 주도로 산업정책을 만든다.

이 정책을 시행하는 곳은 주로 대기업, 소위 말하는 재벌들이다. 그리고 재벌들이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은행이 자금을 공급해준다. 정부는 관치금융을 통해 은행에도 개입한다. 정부와 은행의 지원을 받는 재벌들은 과도한 차입을 하더라도 별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어차피 은행이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경제체제는 국가적으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고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진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성이 떨어지고, 실패했을 때 기업 은행 정부의 연대 책임으로 이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 주식회사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난 때가 1997년이다. 당시 대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지면서 금융권의 부실이 급격히 커졌고, 한국 경제는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대기업들이 무너지자 금융권의 부실채권이 급증했고 금융회사의 자금중개 기능도 빠르게 약해졌다.

금융시스템에 고장이 나면서 이는 다시 추가적인 기업 부도로 이어졌다. 이런 내부의 모습을 보면서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주식회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금융위기가 외화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1997년 1월 28일 한보 부도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경제장관회의가 이수성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 제1청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인호 공정거래 위원장, 안광구 통신산업부 장관, 이 총리,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추경석 건설교통부 장관. [매일경제DB]

1997년 1월 28일 한보 부도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경제장관회의가 이수성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 제1청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인호 공정거래 위원장, 안광구 통신산업부 장관, 이 총리, 한승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추경석 건설교통부 장관. [매일경제DB]

변양호 고문은 당시 상황은 이렇게 설명했다.

“1997년 외국 투자자들의 관심은 한국 정부가 과연 대기업부도->금융부실 증가->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지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한국경제를 하나의 주식회사로 보는 그들은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와 능력을 중시했다. 반신반의하던 외국 투자자들은 1997년 하반기에 들어서서 우리 정부의 의지와 능력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고 이때부터 돈을 빼는 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당시 외국 투자자들이 정부 주도의 개혁이 어려운 이유로 본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손실분담’의 원칙을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융기능 정상화를 위해서는 금융 개혁과 구조조정이 필수적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손실분담이다. 기업 부도로 인해 발생한 부실에 대해 누군가가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손실분담의 주체는 원칙적으로 부실을 야기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업주와 금융회사가 먼저다. 여기서 해결이 안 되면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 이는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어느 정부도 손실을 떠안아 국민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면 더욱 그렇다.

이런 요인들은 외국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돈을 빼기로 결정한 중요한 원인이 됐다. 외국 투자자들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런 문제에 굉장히 익숙해 있었다. 그들은 돈을 빼기로 결정은 했는데, 한꺼번에 빼면 결국 못 받으니까, 만기가 올 때마다 연장을 짧게 해주면서 일부씩 빼내는 행태를 보였다. 결론은 빨리 냈지만 행동은 다소 느렸다.

김형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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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의 부채 구조도 문제가 됐다. 당시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외화 대출로 자금을 조달할 때 단기로 빌려 장기로 운용했다. 통상 대출 금리는 단기에서 장기로 갈수록 높아진다. 은행이나 종금사가 금리가 낮은 단기대출로 해외에서 빌려 국내에는 장기로 빌려주는 손쉬운 장사를 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안됐지만 일단 위기 징후가 보이면서 외국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할 때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줄 돈이 없었다. 만기 불일치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장기 대출을 회수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1997년에는 기업의 과도한 차입경영, 정부의 금융 감독 부실, 금융회사의 단기외채 과다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김형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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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과 민간금융회사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그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는 결국 정부가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 고문은 “당시 만난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금융 부실의 정도가 얼마냐, 너희 나라는 그거에 대해서 너무 작게 생각한다.’고 자주 얘기했다”라고 했다.

외국 투자자들은 구조조정과 관련한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그들은 금융회사를 세 그룹으로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A그룹은 자력으로 회생 가능한 곳, B그룹은 자력으로는 안 되지만 정부가 지원하면 살릴 수 있는 곳, C그룹은 정부 지원을 해도 못 살리는 곳 등이다.

우리나라 정부가 금융회사를 이렇게 셋으로 나눠서 각각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 달라는 게 외국 투자자들의 요구였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만큼 구체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1997년 1월 31일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경제 장관회의에 앞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보철강의 국민 기업화 방안 등 한보대책이 검토됐다. [매경DB]

1997년 1월 31일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한 긴급경제 장관회의에 앞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보철강의 국민 기업화 방안 등 한보대책이 검토됐다. [매경DB]

1997년 12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시 재정경제원 장관(부총리)은 전국을 돌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정책 라인의 공무원들은 위기 징후를 알리고 개혁 정책을 펼 수 있을 정도로 윗선을 설득하지 못했다.

훗날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과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직무 유기’혐의로 재판받았다. 오랜 법정 공방을 거쳐 강 장관과 김 수석의 ‘직무 유기’ 혐의는 무죄로 확정됐다. 사법적으로는 무죄가 됐지만, 논란은 계속 됐다.

변 고문은 법정에서 당시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가 외환위기를 막기 위한 다양한 개혁을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황을 알았어도 실제 조치를 취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변 고문 본인도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여전히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 국회 등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집단이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개인이나 한 집단의 책임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개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절박감을 못 느꼈고 실력도 갖추지 못했다. 특히 당시는 YS정권 말기였다. 소위 말하는 레임덕이 진행될 시기였다. 정부가 개혁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아니었다.

외국 투자자들은 냉정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면서 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은 ‘한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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