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특히 달러와 1:1로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은 국경 간 결제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올해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국경을 넘어 가상자산을 이전할 경우, 재정경제부에 등록하고, 한국은행의 외환전산망과 연결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관계당국이 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언론은 이를 두고 ‘가상자산 해외송금의 제도권 편입’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외국환거래법에서 가상자산이 금기시되어 온 까닭
가상자산은 현행 외국환거래법 안에서 누구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였다. 인정하는 순간 법이 토대를 둔 기성질서가 무너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국경 간 지급결제 시스템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이 체계는 오랜 역사적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은행들은 화폐 실물의 운송 대신 환거래 계좌를 통해 서로 간의 장부 잔액만 바꾸는 지급결제 방식을 고안했다. 이것이 오늘날 SWIFT 통신망으로 이어지는 국경 간 결제의 원형이다. 그러나 지급 지시와 실제 정산이 분리된 구조는 신용 위기가 연쇄 전이되는 취약점을 낳았고, 각국 정부는 통화 발행 독점권과 최종대부자 기능을 가진 중앙은행으로 이를 해결했다.
가상자산은 구조 자체가 다르다. 지급 지시도, 환거래 은행도, 장부 대체도 없다. 블록체인 분산원장에서 송신자의 지갑 잔액이 줄고 수신자의 지갑 잔액이 늘어나는 것이 전 세계 노드에 동시에 기록되며 즉시 결제가 확정된다. SWIFT가 필요 없고, 환거래 은행이 필요 없고, 중앙은행이 필요 없다. 그래서 해외로 돈을 보내거나 해외에서 돈을 받을 때 더 빠르고, 더 저렴하다.
개정법에서는 무엇이 바뀌었나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국내 거주자가 해외 비거주자와의 채권·채무를 결제하는 방법이 원칙적으로 두 가지뿐이라고 전제한다. 외화 실물을 이동하거나, 은행을 통해 원격으로 송금하거나.
외화 실물 이동은 국경을 넘어야 하므로 수출입 신고를 통하여 당연히 당국이 모니터링한다. 은행을 통한 원격 결제는 허가받은 외국환은행만이 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부여하고, 그 은행들을 한국은행의 외환전산망에 연결해 모니터링한다.
둘 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 나머지 결제방법은 변칙적인 결제방법으로 보고 외국환은행이나 한국은행에 사전신고하도록 한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국경간 결제도 이러한 사전신고사항에 해당하나, 한국은행은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은 가상자산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그것을 ‘변칙적인 결제방법’이라는 큰 틀 안에 가두고 국경간 결제를 막아왔던 것이다. 개정법에서는 그것이 허용되는가. 이 관점에서 보면 개정법은 바뀐 것이 없다. ‘변칙적인 결제방법’이라는 틀 자체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법은 기존 질서에 이러한 예외를 허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상자산이 기존 질서를 크게 위협하는 존재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볼드모트의 이름을 드디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지,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소액해외송금 핀테크의 길과 넷플릭스·유튜브의 길
소액해외송금 핀테크도 처음엔 불법 취급을 받다가, 2017년 제도권으로 들어와 기존 지급결제시스템과 동거를 시작했다. 지금은 연간 6조 원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하며 기존 시스템과 공존하고 있다. 그 비결은 이들이 결국 법정화폐를 다루기 때문이다. 풀링·프리펀딩 등 어려운 금융기술을 써도 자금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은행망에 연결돼 있다.
반대로 지상파·케이블TV와 넷플릭스·유튜브 사례도 있다. 전파는 공공재이고, 국가는 허가권으로 지상파·케이블TV의 진입을 통제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전파를 쓰지 않았다. 허가도 받지 않았다. 외국환거래법이 가상자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상파·케이블TV도 이들을 방송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더 개인화된 서비스로 전통 미디어를 잠식했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외국환거래법에 들어온 가상자산, 불편한 동거의 시작
외국환거래법 안에서 기존 질서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가상자산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공존의 길을 갈 것이라고 선뜻 말하기 어렵다.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기반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유튜브와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상자산이전업무’의 정의와 관련한 논란이다. 개정법은 가상자산이전업무를 장소적 관점에서 가상자산을 ‘대한민국과 외국 간에 이전’하는 업무로 정의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외국으로 이전하였는가, 외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전하였는가. 이것을 판단하려면 소재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기존의 지급결제시스템에서는 달러의 소재지를 판단하는 것이 가능했다. 달러 실물은 소재지가 있고, 예금으로 형태를 바꾸더라도 그 예금을 예치한 금융기관의 소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분산원장 노드상의 데이터다. 장소의 특정이 불가능하다. 상대 지갑 주소 보유자가 거주자인지 비거주자인지로 대한민국과 외국 간의 이전인지 아닌지 판단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 쉽지 않다. 외국환거래법상 거주자 개념은 국적·체류 기간에 따라 복잡하게 나뉘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없이도 작동하고, 국경 없이도 이전되고, 장소 없이도 존재하는 것이 가상자산이다. 중앙은행이 있고, 국경이 있고, 장소가 있어야 작동하는 것이 외국환거래법이다. 양자 간 공존의 문제는 중앙은행과 법정통화를 중심으로 설계된 금융 질서 전체의 문제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상품이 국경을 넘고, 돈이 바다를 건너는 길목마다 관세, 대외무역, 외국환거래법이 촘촘히 놓여 있습니다. [D&A 관세·외환리포트]에서는 기업과 개인이 무심코 지나치는 그 길목에서 어떤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실무 최전선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황인욱 변호사는 2013년부터 D&A(대륙아주)에서 활동해 온 관세, 대외무역, 외국환거래법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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