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셀코리아'는 항상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구조상 유가, 환율 등 글로벌 거시 지표에 큰 영향을 받는 탓에 대내외적 환경이 흔들릴 때마다 성장성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34조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25조원) 당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이유다.
올해는 다르다. 과거 위기 때를 한참 웃도는 100조원 이상의 외국인 자금이 코스피 시장에서 빠져나갔지만, 증권가의 우려는 크지 않다. 과거와 달리 반도체를 필두로 한 국내 대표 기업들의 체력이 탄탄한 데다,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는 인공지능(AI) 밸류체인이 아직도 초기라는 판단이다. 업계에서는 코스피를 밀어올릴 반등 모멘텀으로 SK하이닉스의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미국 채권 금리 진정 등을 꼽았다.
거센 매도에도 외인 지분율은 최고 수준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10거래일 연속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누적 순매도액은 51조원이 넘는다. 하루 평균 5조원 넘게 팔고 있는 셈이다. 종목별로 보면 SK하이닉스, 삼성전자, SK스퀘어 등 반도체 관련주에 매도세가 몰렸다.
증권가는 이를 과거 '셀코리아'와는 다른 국면으로 보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시가총액이 1년 사이 3.5배 급등하면서 절대적인 순매도액이 커진 것"이라며 "시총 비중으로 보면 과거 위기 때보다는 덜 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국인 지분율도 사상 최고에 근접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시총에서 외인이 차지하는 지분율은 39.43%다. 외국인의 순매도 속도보다 아직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한 영향이다.
국내 증시를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의 긍정적 전망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미국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클라우드 운영사)들이 엔비디아 칩을 쓰고, 그 칩에 한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들어가는 구조"라며 "한국의 펀더멘탈이 흔들린다는 얘기는 AI 투자가 흔들린다는 뜻인데, 미국의 기술주 흐름과 국가 성장률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6~7월 반등 모멘텀 온다"
국내 기업의 이익 전망치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코스피 목표치를 1만500포인트로 제시한 KB증권은 올해 국내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이 919조원, 내년엔 1240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KB증권보다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잡은 다른 증권사들도 올해 영업이익이 8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307조원)의 3배 규모다. 국내 코스피 상장사는 이미 1분기에 연결 영업이익 156조3194억원을 기록했다. 1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실적이다.
다만 대형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차익실현으로 코스피 변동성은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8000선까지 터치했던 코스피지수는 이날 7208.95에 마감했다. 코스피가 하락하면서 반대매매도 급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반대매매금액은 917억원으로,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가 터졌던 2023년 10월 24일(5487억원)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증권가는 6~7월 코스피가 반등할 수 있는 모멘텀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연구원은 "6~7월 SK하이닉스가 미국 ADR 상장 시 한국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한국 본주까지 같이 오르는 '키 맞추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MSCI 선진국 지수도 실제 편입까지는 멀겠지만 다음달 관찰대상국에 들어가면 선진국 대상 자금이 들어오면서 수급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이충헌 밸류파인더 대표는 "최근 외국인 순매도는 기관 중심이기 때문에 증권사들의 '외국인통합계좌' 서비스가 본격화되면 해외 개인 투자자들이 유입되면서 순매수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했다.
미국 채권 금리 진정 여부도 중요한 요인이다.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날 장중 4.687%까지 올랐다. 2025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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