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군사·정보위에 매파 가득… “한반도 전술핵 배치 논의 주목”[글로벌 포커스]

12 hours ago 5

‘트럼프 2기’ 미국 의회 권력 해부… 공화, 백악관 이어 상·하원도 장악
주요 입법 속도전 예상… 리시·위커 “韓 전술핵 배치해야”
매스트 “北 악당국가, 엄중 제재”… 로저스 “주한미군 중요, 동맹 강화”
IRA 논의, 이민·감세에 밀릴 수도… 韓기업 진출 州의원 적극 공략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일(현지 시간) 취임 당일부터 100여 개의 행정명령을 발동하며 자신의 핵심 공약을 빠르고, 거칠게 밀어붙일 태세다. 백악관과 행정부 주요 직책을 충성파 인물들로 이미 채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입법화를 통해 공약을 완수하려면 의회, 특히 여당인 공화당의 뒷받침이 필수다.


앞서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하는 동시에 공화당이 8년 만에 상하 양원을 석권하는 ‘트라이펙타’를 이뤄냈다. 하지만 공화당은 의석수에서 민주당과 엇비슷하다. 상원의 경우 53석 대 47석, 하원은 219석 대 215석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 의회 역사상 ‘가장 박빙의 다수당’ 지위를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기보다 양호한 정치적 여건에서 출범하지만, 공약 이행을 마냥 낙관하기는 어려운 구도라는 얘기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의회와 더욱 긴밀한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 트럼프 당선인의 연임이 불가능해 시간적 제약이 크다는 점도 향후 의회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거로 꼽힌다. 북핵 대응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르기까지 안보, 통상 분야에서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회 내 주요 정치인들의 성향을 짚어보고, 향후 움직임을 전망해 봤다.

● ‘한반도 전술핵 배치론자’ 주축 외교·군사위

미 의회에서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눈여겨볼 인물로는 짐 리시 상원 외교위원장과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이 꼽힌다. 두 사람 모두 한반도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매파 인사들이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외교통인 리시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상원 청문회에서 “동아시아 동맹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각 전구(戰區)에 재배치하는 옵션들을 모색해야 한다”며 “이 논의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넉 달 뒤에는 한반도 확장 억제 강화를 위해 한미 간 군사 협력을 재정비하는 내용의 ‘대중 경쟁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리시 위원장은 외교위 공화당 간사 시절부터 한국 등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트럼프 당선인과 2기 행정부에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군 예비역 중령 출신인 위커 군사위원장 역시 적극적인 대외 개입을 중시하는 공화당 주류파다. 지난해 6월 의회 연설에서 “미국은 한국, 일본, 호주와 함께 핵 부담 공유 협정을 논의해야 한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무기 재배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화당 군사위 간사였던 지난 회기엔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외교적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며 2025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 등 ‘새로운 옵션’을 담으려고 했다. 이 시도가 법안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NDAA에 “국방부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안보 동맹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하원의 브라이언 매스트 외교위원장은 12년간 육군에서 복무한 참전용사 출신으로, 트럼프 당선인이 강조하는 ‘힘에 의한 평화’ 예찬론자다. 부친이 주한미군 출신인 그는 북한을 ‘악당 국가’라고 부르며 적대적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2018년에는 성명을 통해 “북한은 약속해 놓고 어기는 오랜 역사가 있다”며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 대북 강경 기조, 한국 자체 핵무장엔 거리

이처럼 대북 강경 노선을 공유하고 있는 인사들이 여럿이지만, 이들이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용인하진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리시, 위커 위원장의 발언은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려는 용도로 이해해야 한다”며 “트럼프 당선인 역시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기보다는 ‘당근’을 먼저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트로이 스탠거론 윌슨센터 한국센터장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과 협상에 나설 경우 의회와의 조율은 대부분 제재 완화 분야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2019년 하노이 노딜에 이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또다시 불발될 경우다. 김 교수는 “이 경우 트럼프 당선인이 전술핵 재배치 카드를 꺼내 들고 한국에 비용 지불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원 군사위원장에 유임된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북핵 대응을 위해 괌 미사일 방어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때도 그는 2025회계연도 NDAA 초안에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주한미군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선 최근 하원 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에 임명된 한국계 3선 영 김 의원과 하원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를 이끄는 크리스 스미스 의원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두 의원은 2022년 만료돼 현재 공백 상태인 북한인권법을 재승인하는 법안을 추진했었다. 스미스 의원이 공동의장을 맡은 미국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는 지난해 12월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 내 탈북민 문제와 관련된 인권 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탈북민 보호를 위한 조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 IRA 폐지, 트럼프 최우선 공약에 밀릴 수도

국내 제조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IRA 폐지’ 여부는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과 더불어 공화당 내부 상황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RA는 배터리와 핵심 광물 등 미 정부가 요구하는 원산지 요건 등을 충족하면서 미국에서 제조된 전기자동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안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IRA 폐지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이 감세법 연장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IRA 청정에너지 보조금과 전기차 의무화 조항을 폐지해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연방 예산의 50% 이상을 감독하는 상원 재무위원회의 마이크 크레이포 위원장도 지난해 9월 “IRA는 우리나라의 문제를 잘못 진단하고 ‘큰 정부’ 방식의 틀린 해결책을 내렸다”고 비판하는 등 꾸준히 IRA에 반대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의 다른 ‘최우선 공약’ 추진 방안을 둘러싸고 공화당 내 논쟁이 격렬해지면서 IRA 폐지가 차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국경 보안 강화, 올해 만료 예정인 감세정책 연장, 정부 지출 및 규제 축소 등을 한데 묶어 처리하길 원한다. 반면 존 슌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이민 법안을 먼저 처리하고, 나머지를 이후에 처리하자는 공화당의 기존 노선을 밀고 있다.

공화당은 트럼프 당선인이 요구하는 핵심 법안들을 민주당의 협조 없이 처리하기 위해 ‘예산 조정(reconciliation)’ 절차를 활용할 계획이다. 이는 특정 예산 관련 법안에 한정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없이 단순 다수결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제도다. ‘한 개의 법안’을 지지하는 쪽에선 “1년에 예산 조정 절차를 두 번 활용하는 데 성공한 전례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 개의 법안’에 부정적인 진영에선 수조 달러 규모의 세금 조정이 필요한 방대한 ‘패키지’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맞섰다.

논쟁 끝에 결국 상하원은 각기 다른 노선을 택했다.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지원으로 간신히 재선출된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과 감세 정책을 중시하는 제이슨 스미스 하원 세입위원장은 하원에서 4월까지 패키지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상원은 분리 입법을 고수하기로 한 것. 이런 분열상을 놓고 존 코닌 상원의원은 “실패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 “IRA 수혜지역 공화 의원들 공략 필요”

트럼프 행정부의 입법 속도전이 가능하려면 의석 구도상 공화당의 단일 대오가 필수지만, 이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IRA 폐지만 해도 공화당 내 의견이 엇갈린다. 미 CNBC 방송은 12일 “전기자동차와 배터리 일자리는 특히 공화당 우세주 및 경합주에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IRA 법안으로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강세를 보여 온 지역에서도 수혜를 보고 있다는 얘기다. IRA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공화당 의원들도 한국 등의 대미 투자를 약화시켜선 안 된다는 데에는 공감하고 있다.

존슨 하원의장은 3일 재선출 직후 “터무니없는 전기차 의무화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난해엔 “IRA 폭파는 불가능하다. 망치(폐지)가 아닌 메스(일부 수정)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IRA가 최소한 올해 폐지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내년엔 중간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표를 의식한 공화당이 IRA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기가 더 어렵다. 특히 IRA에 따른 대규모 투자 등 이해관계가 있는 지역구의 일부 의원만 이탈해도 공화당 과반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에서 ‘IRA 폐지’ 공약이 ‘특정 조항 수정’ 등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에게 직접 지급하는 보조금 관련 조항처럼 이견이 적은 부분만 손볼 수는 있겠지만, 법안의 전체 틀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IRA가 올해 안에 폐지될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재량권을 발휘해 IRA 축소 효과를 낼 방법은 다양하다”며 “기업들이 올해 확보된 시간 동안 주정부 등을 통해 관련 보조금이나 세액 공제 집행을 최대한 확정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기업들이 다수 진출한 조지아주와 테네시주 등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지아주 의원들 중에선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공장을 건설 중인 서배너의 버디 카터 하원의원과 SK온 배터리 공장이 있는 커머스 지역구의 마이크 콜린스 하원의원, 한화큐셀의 태양광 모듈 공장이 있는 돌턴의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 등이 한국과 관련이 있다. LG전자, SK온, 한국타이어 등이 진출한 테네시주의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임기가 내년에 끝난다.

● 보복관세 규정 ‘상호무역법’도 변수

통상 분야에선 트럼프 2기의 핵심 공약인 ‘관세 인상’이 한국의 무역흑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이와 관련해 그동안 수차례 추진된 상호무역법안(Reciprocal Trade Act)의 처리 결과가 주목된다. 무역 상대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미국의 관세보다 높으면 상응하는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게 이 법안의 골자다.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미 의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보호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분석한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 하 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는 모두 대상국이기에 한국도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와 관련해 미 하원 세출세입위원회에서 관세 제도를 총괄하는 ‘공급망 세제팀’ 의장인 캐럴 밀러 의원의 역할이 주목된다.

국내 주력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과 맞물려 있는 ‘미국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 및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을 공동 발의한 토드 영 상원의원의 행보도 관심이다. 조선 분야에서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이 법안은 지난 회기 종료 직전 초당적으로 발의돼 이번 회기에 다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직후 한국에 조선업 분야의 협력을 콕 집어 요청한 만큼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한국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 트럼프 입법 속도전 향후 걸림돌은

연방지출 감독 권한을 가진 상원 세출위원회의 수전 콜린스 위원장이 향후 적잖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1기 때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콜린스 의원은 공화당 내 대표적 ‘비(非)트럼프’ 상원의원 중 하나다. 공화당이 상하원 모두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소수파가 중요한 국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비슷한 이유로 30명 안팎 규모의 공화당 초강경파 모임인 ‘프리덤 코커스’의 존재감이 두드러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4년 시한부 대통령’인 상황에서 내년 중간선거 이후 당정 관계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공화당의 관심은 이미 2028년 대선에 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통령의 연임이 처음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음 대선 출마를 노리는 의원들 간 경쟁이 이른 시기부터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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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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