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김 씨는 지난달 말 서울 금천구 가산동 상하수도 공사 과정에서 맨홀에서 가스 냄새가 나서 맨홀 아래로 들어가지 말라는 지시를 들었지만 냄새가 없다고 인지하고 들어가 질식사했다. 김 씨를 구하려고 같이 들어갔던 임 씨도 함께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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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강조한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사진=연합뉴스) |
올해 들어 이달 13일까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 수가 128명으로 집계됐다. 119건의 건설현장에서 1명 이상의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사망 사고가 일어난 건설현장 10곳 중 4곳은 공공에서 발주한 건설현장에서 일어났다.
특히 사망 사고가 일어난 공공발주 건설 현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사금액 대비 낙찰률이 90% 미만으로 저가 낙찰이거나 공사 현장 인력이 20명 미만인 소규모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형 건설사를 향해 면허 취소 등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사고 방지를 위해선 공공발주 건설 현장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건설공사안전관리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올해부터 이날까지 보고된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 현장 건수는 119건으로 집계됐다. 한 건설 현장에서 다수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총 사망자 수는 128명으로 조사됐다. 내국인은 111명, 외국인은 17명으로 집계됐다.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에 따라 CSI에는 사망 또는 3일 이상 휴업이 필요한 부상의 인명 피해, 1000만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건설 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는 올해 2월 부산 기장의 한 리조트 신축 공사 사고로 내부 인테리어 작업 중 6명이 사망했다. 같은 달 서울~세종 고속도로 청용천교 거더 설치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4명이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사망 사고 공사 발주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민간에서 71건(사망자 수 76명)이 발생해 59.7%를 차지했지만 공공 발주 48건에서도 사망자(52명)가 발생했다. 10건 중 4건은 공공 발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공 발주 사망 사고 건설현장의 가장 큰 특징은 공사 금액 낙찰률이 90% 미만으로 ‘저가 낙찰’일 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고 현장 48건 중 41건(85.4%)은 낙찰률이 90% 미만으로 집계됐다. 공사인력이 20명 미만인 사고 현장도 32건(66.7%)이나 됐다.
민간 발주 사망 사고 건설현장의 경우 낙찰률이 90% 미만인 곳은 14건(19.7%)으로 저가 낙찰과 사망 사고의 발생 연관성이 낮았다. 공사 인력이 20명 미만인 곳은 39건으로 전체(71건)의 54.9%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공공 발주 시 발주자와 입찰참가자의 정보 비대칭성을 없애고 입찰참가자의 투찰금액이 높아질 수 있도록 낙찰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제대로 공사하고 적정한 대가를 받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얘기다.
국토연구원은 올해 5월 ‘국토정책 브리프’를 통해 “공공 발주 수요자가 공급자인 건설업체가 불법 하도급에 의존하는 무능력한 업체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계약 대가의 적정성을 높여 입찰참가자들이 공사 수행에 적정한 투찰가를 제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며 “계약 대가의 적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낙찰률 상승을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