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연준의 시간[김학균의 투자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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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후 시장에 풀린 막대한 유동성
실물경제 냉각에도 자산시장 열풍 뒷받침해
금리인하 바라는 트럼프, 연준에 영향력 확대
장기적 금융 불균형 어떻게 막을지 궁금해져

  • 등록 2025-08-14 오전 5:01:00

    수정 2025-08-14 오전 5:01: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토머스 호니그는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일했던 인물이다. 중앙은행가로서 직장 생활을 마감할 즈음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장에 투입된다. 미국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시장이 붕괴하면서 정부 보증 모기지 채권 유동화 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국유화됐고 유서 깊은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그 아찔한 위기 국면에 호니그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의 멤버였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인, 특히 정책 당국자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리먼 브러더스라는 대마(大馬)를 파산시킨 후 맞이한 후폭풍이 너무도 드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린 플레이어는 응당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장 논리로 보면 눈앞의 이익에 취해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리먼브러더스는 마땅히 대가를 치르는 게 옳다. 그것이 파산일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상호 연결성이 너무 고도화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거래 상대방 위험’이라는 숙주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했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였던 AIG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고 미국 최대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도 문을 닫았다. 금융의 부실은 실물경제에도 파급해 2009년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

중앙은행은 실물경제로까지 번진 금융위기의 소방수로 나섰다. 연준은 파격적인 부양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부실자산 매입 프로그램(TARP), 기업어음 시장 안정화(CPFF), 자산 유동화시장 지원(TALF) 정책 등을 잇따라 도입했고 만기가 긴 장기국채를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양적완화(QE)도 이때 도입했다.

호니그는 이 시기 연준이 행한 부양책에 대한 거의 유일한 반대자였다. 그는 2008년에 타올랐던 금융위기가 진정된 이후에도 연준이 과도한 부양책을 지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실물경제 개선에는 거의 기여를 못하면서 자산시장에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2010년에 열린 모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주도한 부양책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통화정책 결정에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FOMC 구성원 중 유일한 반대표였다.

호니그는 ‘중앙은행이 완화정책을 지나치게 길게 유지할 경우 금융 불균형과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이라는 장기적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니그의 의견에 대한 평가야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잘나가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밋밋한 경기’와 ‘뜨거운 자산시장’이라는 어색한 동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2009년 이후 미국의 연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3%다.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렸던 1950년대(3.6%)와 1960년대(4.3%)는 물론 스태그플레이션이 엄습했던 1970년대의 3.2%보다도 낮다. 반면 주식시장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금주에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저점이었던 2009년 3월 이후 S&P 500 지수는 852%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증시 130년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강세장이다. 상승률 기준 역대 2위는 재즈시대로 불렸던 1920년대에 나타났는데 당시(1921년 9월~1929년 8월) S&P 500 지수 상승률은 496%였다.

중앙은행이 풀어낸 막대한 유동성이 실물경제 개선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지만 자산시장에서 풍선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은 발권력을 지닌 중앙은행이 최초에 경제에 주입한 본원통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민간은행들은 이를 기반으로 신용을 창출해 새로운 돈을 만들어 낸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앙은행이 풀어낸 본원통화 규모는 압도적으로 커졌다. 미국 GDP 대비 연준 자산 비율은 2025년 7월 말 현재 21.9%에 달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이 비율은 6.1%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2022년 6월부터 양적긴축(QT)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GDP 대비 연준 자산 비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이었던 2020년 2월의 18.9%보다 높다. GDP로 대표되는 실물경제 규모 대비 화폐 영역에서 풀려 있는 돈의 양은 여전히 많다.

미국 연준 이사회는 의장 포함 총 7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근 멤버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8월 초 사임한 아드리아나 쿠글러의 후임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참모인 스티브 미란이 임명됐다. 쿠글러 전 이사는 연준의 금리 인하에 대해 줄곧 신중론을 견지해 온 매파적 인사였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금리에 큰 영향을 받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늘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서 연준을 압박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모욕적 발언을 여과 없이 내놓곤 했는데 파월 의장을 때로는 ‘멍청이’(numbskull)로, 때로는 ‘심하게 무능한 이’(grossly incompetent) 또는 ‘형편없는 사람’(horrible)으로 불렀다.

이번에 새로이 연준에 입성한 미란은 경제 정책에 관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란은 내년 5월 임기가 끝나는 파월의 뒤를 잇는 신임 연준 의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마침 9월부터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재개할 전망이다. 미국 고용시장이 둔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달부터 시행한 상호관세가 가져올 수 있는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방기금금리 선물에 내재된 9월 FOMC에서의 금리 인하 확률은 8월 13일 현재 96.2%에 달하고 있다. 다시 중앙은행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중앙은행은 우리 시대 자산시장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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