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7일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다만 다음달 29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1분기 경기 부진과 통상 여건 악화로 성장의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면서도 “미국 관세정책 변화와 정부 경기부양책 추진 등에 따른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크고, 높은 환율 변동성과 가계대출 흐름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어 현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관세정책 변화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라며 “스피드를 조절하며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라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금리 동결 결정에 동참했다. 신성환 금통위원만 금리를 0.25%포인트 내려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이 총재는 다만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통화정책방향 회의는 5월과 7월에 예정돼 있다. 시장은 한은이 5월에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5월 회의에서 2월에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1.5%)를 대폭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총재는 이날 “올해 성장률이 상당히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비둘기파적 금리 동결
금통위원 6명 전원 "3개월내 인하 열어둬야"
한국은행이 17일 경기 위축과 통상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연 2.75%인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미국 관세정책의 불확성이 걷힐 때를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확 들어온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선 스피드를 조절하며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현 상황을 비유했다. 한국은행은 다음달엔 금리를 내릴 의향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시장은 예상에 부합하는 금리 결정보다는 경기가 애초 전망보다 빠르게 식고 있다는 한은의 경제 상황 진단에 더 주목했다.
◇“1분기 성장률 상당폭 하향”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올해 1분기 및 향후 성장 흐름 평가’ 보고서를 통해 “1분기 성장률(직전 분기 대비)은 소폭의 마이너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이 다음달 29일 수정 경제전망 발표를 앞두고 분기 성장률 상황을 미리 알려준 것은 이례적이다.
한은은 지난 2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도 탄핵정국 장기화 등으로 인한 내수 침체 등을 고려해 올 1분기 성장률을 0.5%(지난해 11월 전망)에서 0.2%로 0.3%포인트 내렸다. 이로부터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성장률을 다시 큰 폭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2월 두 달간 내수와 수출 데이터를 보면 성장률이 0.4%도 나올 수 있는 수준”이라며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3월 경제 데이터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총재도 “1분기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지 몰랐고, 정치 불확실성이 오래 갈지도 몰랐다”며 “미국 관세 충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1분기 성장률은 상당폭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올해 전체 경제성장률도 기존 1.5%에서 1.1~1.3% 수준으로 하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치 고려 않고 경제만 보고 판단”
한은도 이런 경제 상황을 고려해 다음달 금통위에선 금리를 내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분명하게 줬다. 이 총재는 3개월 통화정책 방향을 알려주는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한 질문에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다음달 29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린다는 분명한 메시지”라면서도 “이런 전망이 시장에 선반영돼 채권과 외환시장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선 일정과 관계없이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이 총재의 발언도 5월 인하설에 힘을 보탰다. 그는 대선 투표일을 닷새 앞두고 금리를 내리면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5월 인하 가능성이 크다고 (시장은) 당연히 해석할 것”이라며 “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경제 상황만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화·재정정책 공조해야”
한은이 ‘비둘기파(통화 완화 기조)적 금리 동결’을 결정한 것은 통화정책의 여력을 아껴두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현재 기준금리에선 잠재성장률 수준인 2.0%까지 금리를 0.25%포인트씩 세 차례 내릴 수 있다. 이 총재는 ‘연내 기준금리를 두 차례 인하할 것으로 보는 시장 예상보다 더 낮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5월 (수정) 경제전망을 할 때 (하락)폭이 얼마나 낮아질지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통화정책의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금리 인하 시점을 뒤로 미룬다는 해석도 있다. 이 총재는 “경기가 이렇게 나빠질 땐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만 가지고 하기는 어렵다”며 “양쪽이 어느 정도 공조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추가경정예산 규모와 관련해서도 “추경을 (정부안대로) 12조원 규모로 집행하면 0.1%포인트 정도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세계 성장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만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엄청난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