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선관위…‘이재명은 안됩니다’ 현수막, 불허 나흘만에 허용

5 hours ago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3일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 불허 뒤 편파 논란이 일자 4일 만에 “현재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부분이 단순한 정치구호로 볼 여지가 있다”며 허용하기로 했다. 앞서 선관위가 조국혁신당이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 지역구(부산 수영)에 내건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 공범’ 현수막을 허용하면서 정 의원의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을 불허한 결정을 번복한 것이다 .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뉴스1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부터 1시간반 가량 전체회의를 열고 현수막 논란을 긴급 안건으로 올려 논의했다. 선관위는 회의가 끝난 뒤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따른 궐위 선거를 전제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어 전체회의에서 신중히 검토했다”며 “사회변화와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 254조(선거운동기간위반죄)를 운용하기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탄핵 심판이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 인용을 전제로 한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한 것이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압박에 굴복했느냐”고 반발했다.

정치권에선 “선관위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선관위는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여당인 민주당 후보가 내건 ‘친일청산’, ‘적폐청산’ 문구는 허용하면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쓴 ‘민생파탄’ 문구를 불허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수막 논란이 반복되면서 선관위가 스스로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선관위, 논란 4일 만에 불허 결정 번복

앞서 정 의원이 ‘이재명은 안 된다’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 16일 중앙선관위와 부산선관위에 가능 여부를 문의했을 때 선관위는 “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낙선 목적의 사전선거운동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될 수 있다. 현수막을 게시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러자 정 의원이 19일 불허 사실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정략적, 편파적 행태”라고 거세게 비판하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선관위는 이날 국회 답변에서부터 입장을 바꿨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김용빈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이 ‘현수막 이중 잣대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질의하자 “담당자가 검토했는데 법문만 검토를 했다”며 “전체적으로 볼 때 너무 이른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답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재명아 감옥가자’ 같은 현수막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 영역 안에 있어 허용을 했다”며 “사전 선거운동에 대한 조문만 가지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선관위가 입장을 밝히자 “난명지안(難明之案·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했다.이날 행안위에선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논란이 됐다. 개정안에는 사전 투표, 투개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 대해 최대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이 “사실상 선관위 불신죄를 묻겠다는 것”, “선관위 셀프 성역화 법”이라고 반발하자 김 사무총장은 “부정 선거론자들을 선거자유방해죄 등으로 고소·고발했지만 전부 무혐의가 나왔다”고 했다.

● “선관위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 자초”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12.22. 뉴스1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4.12.22. 뉴스1
국민의힘은 “선관위의 편파적 결정이 처음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내로남불’ ‘위선’ ‘무능’ 등의 표현이 들어간 투표 독려 문구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자, 당시 선관위는 “해당 문구가 국민의힘 등에서 민주당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며 불허했다. 2020년 4월 21대 총선 직전에는 ‘친일청산’ ‘적폐청산’ 문구는 허용하고 ‘민생파탄’ 문구를 불허해 논란이 되자 세 표현 모두 불허하기도 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잃고 있다”며 “선관위가 신뢰를 잃고,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건 민주주의에 대한 정말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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