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꺼내 든 라이터, 프랑스 로열패밀리가 즐겨 들던 가죽 가방,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의 애장품까지. 이 모든 것을 잇는 하나의 이름이 있다. 152년 역사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S.T.DUPONT(에스.티.듀퐁)’이다.
누아르와 액션 영화마다 등장해 라이터로 유명한 듀퐁이지만 사실 이 브랜드의 역사는 가죽에서 비롯됐다. 1872년 시몽 티소 듀퐁이 파리에서 외교관, 사업가 등을 위한 가죽 여행 가방을 만든 게 시작이다. 70년간 상류층을 위한 가죽 제품으로 명성을 얻은 듀퐁은 1940년대 가스라이터를 출시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헵번처럼 시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스타부터 유럽 왕실까지 그들의 손에는 항상 듀퐁 백이 있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태국, 이집트, 이란 왕족까지 듀퐁을 찾아와 가죽 제품 제작을 맡겼을 정도다.
다시 태어난 헵번의 분신
듀퐁이 최근 공개한 새로운 가죽 컬렉션은 이 같은 브랜드 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새로운 가죽 컬렉션은 총 네 가지로 ‘리비에라’ ‘엑스 백’ ‘에이펙스’ ‘모노그램 1872’다.
리비에라는 듀퐁이 처음으로 선보인 여성용 핸드백이다. 헵번의 ‘필수템’으로도 유명하다. 마릴린 먼로에게 ‘샤넬 넘버 5’가 분신이었다면 헵번에겐 리비에라가 그런 존재였다. 리비에라엔 비밀스러운 수납 공간이 있다. 헵번은 그 안에 영화 대본, 보석, 화장품 등 각종 귀중품을 넣어 다녔다고 한다.
새롭게 재탄생한 리비에라에도 비밀 공간이 있다. 자물쇠로 보호할 수 있어 귀중품을 넣어 다니기 좋다. 전체적인 백 디자인은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하다. 파티부터 비즈니스 미팅까지 어디서든 부담 없이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이다. 사이즈는 스몰과 미디엄으로 나뉜다. 스몰 사이즈는 파티나 연말 모임용, 미디엄 사이즈는 다양한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일상용으로 추천한다. 넉넉한 수납 공간을 자랑한다.
엑스 백은 듀퐁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다. 듀퐁의 시그니처 패턴인 ‘파이어헤드 기요셰 패턴’을 핸드백 표면에 새겼다. 기요셰 패턴이란 직선과 곡선의 디테일한 선을 새겨 넣는 기법인데, 듀퐁은 라이터와 만년필에 기요셰 패턴을 즐겨 쓴다. 핸드백을 장식하는 단순한 선과 면이 대담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준다.
로열패밀리의 백을 재해석하다
엑스 백이 듀퐁만의 절제미를 담아냈다면 에이펙스는 과감한 기하학적 미(美)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이라이트는 3차원으로 구현한 가죽 디자인이다. 삼각형이 교차하는 파이어헤드 패턴이 화려한 디자인을 완성한다. 볼륨감 있는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마치 보석을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이펙스의 원조는 듀퐁 ‘미노디에르’ 백이다. 1941년 인도 파티알라 왕이 “100명의 아내를 위한 백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자 듀퐁이 제작해준 그 가방이다. 듀퐁은 이를 남성과 여성 모두 사용 가능한 유니섹스 제품으로 재해석했다. 미니 트렁크, 나노 트렁크, 백팩, 토트백, 클러치 등 다양한 디자인이 있다.
가죽 가방을 사용하고 싶은데 실용성도 놓칠 수 없다면 ‘모노그램 1872’를 눈여겨보자. 1872년은 듀퐁이 탄생한 해다. 그만큼 브랜드의 본질과 완벽한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새롭게 출시된 모노그램 1872는 백팩, 토트백, 클러치 등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관리하기 어려운 여느 가죽 제품과 달리 방수 코팅 캔버스를 적용해 사용이 편리하다. 동시에 1950년대 큰 인기를 끈 기요셰 패턴으로 듀퐁만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네 가지 컬렉션은 지난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문을 연 듀퐁 매장에서 볼 수 있다.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 거리, 홍콩 퍼시픽 플레이스에 이어 듀퐁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선보인 리브랜딩 스토어다. 단순히 제품만 파는 곳이 아니라 듀퐁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통, 장인 정신을 매장에 녹여낸 공간이다.
듀퐁의 상징인 라이터에서 영감을 받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기하학적 직선, 듀퐁의 전매특허인 금은 세공 기술 등 매장을 돌아보면서 듀퐁의 헤리티지를 느낄 수 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