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 하는 2%대 수익률 퇴직연금
본보가 초고령사회를 맞아 신년기획으로 보도하고 있는 ‘실버 시프트, 영올드가 온다’ 시리즈를 준비하며 부럽다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글로벌 각국의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가 여유를 즐기고 새로운 도전을 하며 제2의 인생에 나서는 것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우리의 노후를 떠올리게 됐기 때문이다.
노후의 삶을 결정짓는 요인은 여러가지이고, 이들 나라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영올드는 아니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노년의 삶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들 뒤에 탄탄한 연금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경제적 안전망은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었다.우리의 상황은 딴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녀들 공부, 결혼시키고 나니 집 외에는 남은 게 없다는, 연금은 또 왜 이리 적냐는 퇴직자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미국의 퇴직연금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7.79%인 반면 한국은 2.07%에 불과하다. 긴 세월의 수익률 격차가 불러오는 비극은 엄청나다. 매월 50만 원씩 30년 동안 퇴직연금을 납입했다고 가정할 때 미국 근로자는 7억2000만 원을 받지만, 한국 근로자는 겨우 퇴직금 2억5000만 원을 손에 쥔다. 선진국 영올드와 달리 한국 노인이 은퇴 후 지갑을 닫고, 외출을 줄이는 이유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위기감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령화 시계는 지금도 초고속으로 흘러가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로 모든 논의가 실종됐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고령화에 발맞춘 구조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비 저하와 생산성 타격 등으로 0%대 저성장이 찾아올 것이란 진단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퇴직연금 시장에 ‘경쟁’ 바람 불어야
노후 자금을 분산해 수익률을 높이자며 디폴트 옵션을 도입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 디폴트 옵션 제도를 취지에 맞게 개선하는 한편 퇴직연금 실물 이전 서비스와 같이 금융사 간 수익률 경쟁에 불을 붙일 더 다양한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 호주에는 수익률이 일정 수준 이하인 수탁법인을 매년 발표하고, 최하위 법인을 퇴출하는 제도까지 있다. 치열한 경쟁이 오늘날 호주를 연금 백만장자의 나라로 만든 셈이다.
마침 2025년 퇴직연금 제도 도입 20주년을 맞았다. ‘경쟁’의 바람이 불어 퇴직연금이 진짜 노후 버팀목으로 거듭나야 한다. 노인 씀씀이가 살아나야, 0%대 저성장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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