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PISA 데이터를 교과 지식, 학습 역량, 타자와의 관계, 주체적 자아라는 4개 영역(29개 세부 지표)으로 분류해 학생의 역량을 복합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는 우리 교육이 자기밖에 모르는 헛똑똑이만 길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기적인 헛똑똑이 키우는 교육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과목별 학업 성취도는 매우 우수했다. 창의적·비판적 사고가 포함된 학습 역량도 양호했다. 하지만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서툴렀고(교우 관계 36위, 협력 26위)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능력도 부족했다(주체성 20위, 자주성 33위, 여가 생활 36위, 진로 탐색 29위). 공부는 잘하지만 그 능력을 남들과 나누거나 공동체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2018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4개국 대학생을 조사한 결과와도 상통한다. 각국 대학생에게 고등학교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골라 보라고 했더니 우리나라 대학생 80.8%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戰場)’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광장’은 12.8%뿐이었다. 중고교 시절 무한경쟁 속으로 떠밀려 각자도생만 배운 한국 대학생은 식수가 오염된 상황을 제시했을 때 집단적 해결보다 개인적 자구책 마련을 유독 선호했다.
‘사활을 건 전장’의 대표적인 승자들이 우리 사회 집권 엘리트일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대선 정국으로 이어진 국가적 혼란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을 통과한 직업 관료, 법조인, 그리고 이들이 다수인 국회까지 이른바 집권 엘리트의 합작품이다. 시험 정답은 잘 맞히지만 상식에선 벗어난, 유능할진 몰라도 무책임한, 공익으로 포장해 사익을 추구하는, 국민을 말하지만 공감력은 상실한…. 그들만의 논리에 갇힌 ‘비장한 추락’을 보고 있기가 괴로운 요즘이다.
엘리트의 타락이 부른 국가 위기지금도 우리는 지식만 달달 외우면서 자기 생존을 위해 도덕적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 엘리트들만 길러내고 있다. 1점 차이로 내신 등급이 달라지고, 수능 1점 차이로 대학이 바뀐다.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선 섣불리 친구와 협업했다간 도태될지 모른다. 월화수목금금금 학원 뺑뺑이를 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을까. 전국 학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면서 진로를 탐색하고 꿈을 키우라고 다그치는 어른들은 또 얼마나 기만적인가.KEDI는 이번 지표 개발을 통해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 핵심 역량을 도출했다. 바로 자신의 능력과 지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자아 성찰 문해력),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전략적 학습 문해력),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중심으로 세계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능력(관계적 문해력)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에게 가장 결핍된 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대학 서열이 사라지지 않고 일자리 시장이 바뀌지 않는데 과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엘리트들의 아찔한 민낯을 보고 나니 대입을 향해 일렬로 달리는 교실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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