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정년연장 논쟁과 ‘잃어버린 세대’

2 weeks ago 11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올해 초 정년퇴직한 지인은 호적상 생일이 1월 1일이다. 실제보다 한두 달 늦게 출생신고가 됐다고 했다. 퇴직이 늦어져 좋은 거 아니냐 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하루 차이로 국민연금을 1년 더 늦게 받게 됐다는 얘기다. 1998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라 1965년생부터는 만 4년의 소득공백기를 거쳐야 한다.

법정 정년과 연금수급 시기가 동떨어져 생기는 소득 절벽을 해결하고 저출산 고령화가 가져올 인구 위기에 대처한다며 ‘정년 연장’ 논쟁이 뜨겁다. 8일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계속고용 의무 제도화’ 방안을 내놓았다. 정년 연장을 법으로 정하지 말고 기업에 계속고용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 1년을 연구했다는데 뜯어 보면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와 매우 유사하다.

여러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의문이 생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년’이란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뜻한다. 선진국 중 정년(60세) 따로, 연금수급 연령(65세) 따로인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엄청난 저출산 고령화에 시달리고 연금 재원 마련에 갈수록 어려움이 예상되는 점도 닮았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일본, 연금 연령 올리기 전 고용 연령부터 손봐

일본은 법정 정년 60세를 그대로 두고 모든 기업에서 65세까지 고용 연령을 높여왔다. 주목할 점은 연금개혁과 고용 확보 조치는 항상 함께 추진됐다는 것. 2001년부터 연금 수급 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25년에 걸쳐 늦췄는데 그 10년 전인 1990년부터 고령자 고용 확보를 위해 60세→65세→70세의 순으로 노력의무화(유도)→의무화→법제화의 과정을 밟았다.

1994년에는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면서 연금 수급 시기를 2001년부터 올리기로 결정했다. 2000년 65세까지 고용 확보 조치 도입을 노력의무화, 2004년 법적의무화를 거쳐 2020년엔 70세까지 계속고용을 노력의무화했다.

이 결과 2023년 현재 65세까지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한 기업은 99.9%에 이른다. 국가책임인 사회보장 부담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대신 기업에 상당한 재량권을 줬다. 기업 중 69.2%가 재고용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퇴직 전 대비 임금 수준은 대기업의 경우 75%, 통상은 60% 정도다. 업황이 좋은 30%의 기업은 아예 정년을 없애거나 65세 이상으로 올렸다. 퇴직에 즈음해 회사가 제시한 재고용 조건을 마주한 근로자들의 고민담이 흔히 들려온다. 달라진 업무 내용, 주 3일 출근, 급여 삭감, 사회보험 지원 없는 촉탁직….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고민하는데, 2023년 기준 87.4%가 회사에 남았다.

제도의 구멍에 갇힌 ‘잃어버린 세대’

연금이니 정년이니 자기 일로 닥치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제도 설계와 정책 결정의 책임을 따지는 건 다른 얘기다. 한국은 1998년 말 연금 수급 연령을 2013년부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린다고 결정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소득 공백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2013년 60세를 맞은 1953년생의 1년부터 시작해 4년마다 1년씩 소득 공백이 추가되고 있다. 제도상 구멍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계속고용’의 도입 시기도 문제다. 경사노위안의 2028년이라면 1968년생부터 적용 대상이 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몰린 1953∼1967년생까지 15년간의 세대를 내다버리고 1968년생부터 챙기면 된다는 건가. 또 다른 ‘잃어버린 세대’가 이렇게 탄생한다.

현재 노동계는 임금 삭감 없이 법정 정년을 65세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퇴직 후 재고용을 통해 고용 대상과 임금을 조정하고 싶어한다. 고용 주체는 기업이므로 기업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맞을 듯하다. 청년고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퇴직자들이 재고용을 통해 소득 절벽을 헤쳐나가고 세금을 내고 사회에서 쓸모를 발휘한다면 그 자체가 청년들의 부양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과 내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글로벌 이슈

    글로벌 이슈

  •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

  • 동아시론

서영아 콘텐츠기획본부 기자·국장급 sya@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