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화폐의 실제 가치는 얼마일까요?”
지난 5월 22일 오후 경기 부천시 부천정보산업고 강의실. 화면 속에 5만원권 사진이 띄워지자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강단으로 향했습니다. 김기석 비트플래닛 부사장은 잠시 학생들의 반응을 살핀 뒤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이 종이의 원가는 200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를 5만원으로 인정할까요.”
강의실은 금세 집중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학생들은 필기구를 움직이며 강사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습니다.
이날 수업은 ‘2026 청소년 경제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됐습니다. 매일경제신문과 서울시·경기도교육청, 수도권 특성화고가 공동 운영하는 이 프로젝트는 교과서 속 이론을 넘어 학생들이 실제 금융과 시장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학교를 찾아가는 현장 중심 강의입니다.
강단에 선 김 부사장은 전 호주뉴질랜드은행 한국 대표와 JP모건 이사, JB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지낸 금융 전문가입니다. 크라우디 창업자로도 활동한 그는 이날 돈의 탄생부터 미래 금융까지의 흐름을 학생 눈높이에 맞춰 설명했습니다.
강의의 출발점은 ‘돈의 본질’이었습니다. 김 부사장은 화폐가 금속이나 종이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공유하는 신뢰와 약속 위에서 작동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인류 초기 거래를 예로 들며 “최초의 장부는 종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물건을 빌리고 돌려받는 약속을 기억하는 과정이 곧 거래의 시작이었고, 여기서 화폐의 개념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입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역사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금으로 교환력을 보장하던 금본위제부터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 체제, 그리고 1971년 닉슨 쇼크 이후의 신용화폐 시대까지 다루며 현대 금융 시스템이 형성된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후반부에는 ‘돈의 시간 가치’가 핵심 주제로 다뤄졌습니다. 김 부사장은 이른바 ‘72의 법칙’을 소개하며 복리의 힘을 전했습니다. 투자 수익률로 72를 나누면 자산이 두 배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가늠할 수 있다는 원리로, 그는 “투자는 수익률만큼이나 얼마나 일찍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컸던 순간은 짜장면 가격 변화를 예로 든 인플레이션 설명이었습니다. 김 부사장은 “1980년대 짜장면 한 그릇이 500원 수준이었다면 2000년대에는 2500원, 최근에는 1만원 안팎까지 올랐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돈의 구매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예전에는 1억원이면 평생 먹고산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인플레이션이 자산 가치와 소비 여력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돈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저축이나 투자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투자가 만능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시장에서 크게 성장한 기업도 있지만 실패한 투자도 많다”며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공부하고 판단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후 강의의 시선은 미래 금융으로 향했습니다. 김 부사장은 블록체인과 디지털 금융을 소개하며 중앙기관 없이도 거래 신뢰를 확보하는 분산 구조를 쉽게 풀어냈습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김 부사장은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습니다. 돈은 결국 신뢰라는 점, 금융은 시대와 기술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점, 그리고 미래 금융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현장의 반응도 긍정적이었습니다. 3학년 윤하율 학생은 “닉슨 쇼크와 화폐 신뢰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돈이 사회적 약속 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노수애 학생 역시 “처음에는 생소한 용어들이 낯설었지만 실제 사례와 연결해주셔서 이해하기 쉬웠다”며 “경제와 금융을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김푸름 교사는 “학생들이 교과서 이론을 넘어 실제 금융 현장을 경험한 전문가의 시각을 접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며 “경제를 어렵고 먼 개념이 아니라 진로와 생활 속 문제로 연결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윤성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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