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판세 왜곡한 엑스포 유치전… ‘한탕주의식’ 대왕고래 프로젝트

1 week ago 7

[尹정부 실패, 무엇을 남겼나]
尹 입맛에 맞는 보고만 올리다… 엑스포 유치전 1차투표서 대패
실무 당국자 “이런 간신들 처음봐”
대왕고래 사업성 불확실성 큰데도… 총선 패배 국면전환하려 발표 강행

윤석열 대통령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3.11.29.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2023.11.29. 뉴시스
“공무원 생활 20년 하면서 이런 간신들은 처음 봤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이 한창이던 2023년, 실무를 맡고 있던 한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산이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열세인 상황인데도 윤석열 전 대통령 입맛에 맞는 낙관적인 전망치가 계속 보고됐다는 것이다. 외교부 본부나 재외공관에서 보수적으로 표심과 교섭 상황 등을 보고하면 “외교부가 이래서 안 된다”는 대통령실 인사의 질책도 빈번했다고 한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2023년 11월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투표에서 부산은 2차 투표도 가보지 못한 채 119표 대 29표로 대패했다.

엑스포 유치 실패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보 역량 부실뿐만 아니라 경직된 보고 체계와 오판에 기인한 처참한 결과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 7월 유치위원회가 출범한 뒤 민관은 1년 4개월 동안 ‘원팀’으로 지구 495바퀴나 되는 거리를 움직이며 유치전을 벌였고 윤 전 대통령은 투표 전날까지 각국 정상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열세’ 분석은 ‘박빙’ 분석으로 뒤바뀌어 보고가 이뤄졌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야당 의원의 공개로 논란이 된 외교부의 3급 비밀 문서에도 ‘1차 투표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며 2차 투표에서 한국이 과반을 득표해 유치에 성공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BIE 투표 불과 1주일 전 각 공관에 뿌려진 문서였다.

유치 실패에 결국 윤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저의 부족 탓”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보고받은 판세와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자 윤 전 대통령은 당시 화가 많이 나 있었다는 게 참모들 증언이다. 하지만 외교 및 행정력 낭비를 초래했다는 비판에도 책임지는 이는 없었고, 당시 대통령실 담당 기획관은 여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호 국정브리핑’으로 직접 발표했던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가스전 개발사업)도 불확실성이 큰 사업을 장밋빛으로 포장해 ‘한탕주의식’으로 밀어붙인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석유공사 등 담당 기관들은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프로젝트 가치를 11조 원 정도로 추정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최대 140억 배럴”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약 2200조 원) 등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정부 일각에선 발표가 성급하다는 담당 기관 의견에도 대통령실이 이를 강행했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총선 패배 이후 국정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윤 전 대통령 발표 8개월 뒤인 올해 2월 산업부 고위 당국자는 1차 탐사 시추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난해 6월) 1차 발표는 저희가 생각하지 못했던 정무적인 영향이 많이 개입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국면 전환용으로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자 담당 기관들이 경제성 등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웠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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