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하다 보면 슬그머니 싹트는 궁금증. ‘글쓴이는 어떤 사람일까.’ 번역 외서(外書)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해외 저자는 만남의 문턱이 높죠. 한국 독자와 해외 작가 간 소통을 주선합니다. |
⑦직관의 폭발-이와다테 야스오 히가시치바 메디컬센터장
‘AlphaGo resigns(알파고 기권).’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를 꺾자 전 세계가 환호했다. 3연패 후 4국 만에 나온 ‘기적의 1승’은 인간이 알파고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로 남아 있다. 일본의 뇌과학 권위자인 이와다테 야스오 히가시치바 메디컬센터장(68)은 그의 승리를 “직관의 힘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알파고의 방대한 데이터로도 예측할 수 없는 수를 뛰어난 직관으로 창조해냈다는 것. 오랜 기간 신경과학을 기반으로 직관이 작동하는 원리를 연구해온 그는 “AI는 승률을 높일 다음 한 수는 훌륭하게 계산해 냈지만 처음 보는 수에는 대응하지 못했다”며 “여기에 AI 시대에 필요한 사고법의 단서가 있다”고 했다.
논리와 데이터를 거스르는 생각의 흐름, 뇌에서 부지불식간에 내리는 신호,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선택의 이끌림…. 이런 순간 내지는 느낌을 우리는 직관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와다테 센터장은 “직관은 본능이 아닌 뇌에서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가장 논리적인 신호”라며 “훈련을 통해 누구나 직관력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 치바대에서 28년간 뇌신경외과학 교수로 재직하며 뇌세포 네트워크 연구 등에 매진해왔다. 직관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훈련법 등을 정리한 저서 ‘직관의 폭발’(웅진지식하우스)을 펴낸 이와다테 센터장을 e메일로 만났다.
“무의식 속 예상치 못한 기억들이 서로 연결될 때, 그것이 직관으로 의식에 떠오른다. 대뇌피질 전체가 작동한 결과로, 감각에 기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직감과는 다르다.”―무의식 속 기억이란 인식하지 못하는 기억인가.
“사람의 이름이나 사건 같은 에피소드 기억은 의식적으로 작동하지만, 이해한 것에 대한 기억인 ‘의미 기억’은 무의식에 저장돼 있다. 지혜와도 같은 이 의미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관을 결정하며, 직관 역시 의미 기억의 네트워크에 따라 만들어진다.”―무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직관을 개인의 의지로 강화할 수 있나.
“의미 기억은 무의식에 저장돼 있기에 의지로 꺼내기 어렵다. 그때의 기분, 컨디션, 뇌의 작동 방식이 어우러져 의미 기억 간 연결이 생겨나면서 직관이 발생하는 것에 가깝다. 하지만 무의식에 저장된 기억들은 모두 의식 속에서 경험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험을 축적할 것인지는 개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
집중력은 직관 방해꾼
꺼림칙하거나 마냥 잘 될 것 같은 ‘촉’이 돌이켜보면 맞아떨어진 경우가 적지 않다. 진로, 투자, 배우자 선택 등을 앞두고 식스센스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이유다. 인생의 치트키와 같은 직관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이순신…. 뛰어난 직관을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직관은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 핵심은 집중하지 않는 연습이다. 직관을 발휘하려면 뇌를 광범위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집중은 이를 방해한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일을 소화해야 하는 작업에는 집중이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창조하는 단계에서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집중에서 벗어나 뇌를 분산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분산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과 일치한다. 산책, 목욕, 충분한 수면에 더해 △고정관념 의심 △비판적으로 데이터 수용 △적극적인 대화 등이 도움이 된다. 특히 인간은 불안이나 공포의 대상이 사라지면 더 넓게 뇌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기쁨을 찾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성실하고 늘 과제에 몰두하는 성향을 지닌 이들이 ‘멍 때리기’를 잘 못한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의식적인 사고가 아닌 순간의 직관으로 나타난다. 휴식 없이 생산성에만 매달렸을 때 최종 성과는 더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책의 핵심은 ‘직관력을 폭발시키는 법’을 설명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직관이 폭발하는 순간을 기대할 것이다. 이를 위해 4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평소 생소한 분야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긍정적 감정을 느끼고, 오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불필요한 정보를 망각하는 것이다. 특히 망각은 인간의 뇌가 가진 최대 이점이다. 네트워크에 추가되지 않는 불필요한 정보는 뛰어난 정보 간 연결을 방해할 뿐이다.”
―대화와 예술작품 감상도 직관에 큰 도움이 된다고 썼다.
“타인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면 뇌에서 일어나는 연결 네트워크가 두 배 이상 활성화된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대화 도중 번뜩이는 직관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또 취향에 맞는 그림을 찬찬히 감상하면 그림에 담긴 세계가 내 안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이 때 과거의 기억이 자극돼 예상 밖의 형태로 의미 네트워크가 연결되며 직관을 불러일으킨다.”
50,60대에 직관 가장 뛰어나
이와다테 센터장은 “직관은 논리적 사고를 포괄하는 고차원적인 뇌의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본능과 감정, 경험은 물론 논리적 사고와 지식이 결집해 무의식중에 내리는 판단이 직관이라는 것.우뇌는 감정을, 좌뇌는 논리를 담당한다는 널리 알려진 속설에 대해선 “감정도 논리도 뇌 전체를 사용하여 생성된다. 집중계와 분산계는 한쪽이 켜진(on) 상태이면 다른 쪽은 꺼진(off) 상태로 작동하는 반면, 우뇌와 좌뇌는 함께 on 혹은 함께 off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했다.
―직관처럼 의사결정을 하는 순간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있다면.
“‘정서기억’(情動記憶)이다. 어떤 사건을 경험할 때 감정 반응도 머릿속에 저장된다. 이 감정 기억이 축적되면 유사한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결정된다. 기쁨과 연결된 사건이나 유사 상황은 ‘선호’가 되고 분노나 공포와 연결된 것은 ‘혐오’로 이어지는데, 이런 경험치는 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형성한다.”
―직관에 대한 의심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는 느낌 자체가 직관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직관이 동시에 떠오른다면 나중에 떠오른 새로운 직관이 선택될 가치가 있다.”
―직관이 가장 잘 발휘되는 연령대가 따로 있나. 30대보다 50대에 창업한 경우 성공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데….
“우수한 직관을 얻기 위해서는 풍부한 기억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이런 측면에서 50, 60대가 직관 발휘에 최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은 경험이 부족하고, 그 이후는 뇌의 노화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엉뚱한 직관에 이끌러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직관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논리나 데이터에만 의존하려 하기 때문이다. 데이터란 수치화된 정보로, 데이터 기반 논리적 사고는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방식 호의 반감 같은 감정은 데이터로 절대 수치화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쩌면 세상을 움직이는 결정타다.”
“AI는 직관 생성 못 해”
―챗GPT와 같은 AI에도 직관이 존재하나.“인공지능은 병렬 처리에 약하며 사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직관을 생성할 수 없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다양한 의도가 얽히기에 난도가 높다. 훌륭한 직관으로 슬기롭게 위기에 대처한 역사적 사례가 궁금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일상을 유지하며 해당 문제와 관계 없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선제 공격을 하는 대신 튀르키예에 배치했던 미사일을 철거하며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이란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만약 케네디가 ‘쿠바에서 소련 핵미사일 발견’이란 소식이 불러일으킨 공포의 정동과 선제공격파의 의견에 휩쓸려 집중계가 주도하는 빠른 결정을 내렸다면, 우리가 보는 세계의 풍경은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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