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수미 40년간 쓴 일기 출간
식품 사업으로 스트레스 커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토로
평범한 엄마의 삶 꿈꾸기도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
지난 10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김수미(본명 김영옥)의 일기장엔 50년 넘게 쉼 없이 활동하며 연기 열정을 불사른 대배우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김수미가 30대부터 40년간 써 내려간 일기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가 12일 책으로 나왔다. 고인은 "이 책이 출간된 후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제 삶의 철학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남겼다.
1971년 MBC 공채 3기로 데뷔한 고인은 46년이 지난 2017년 일기에서도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고 쓸 정도로 연기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드러내왔다. 공황장애로 고통을 겪던 올해 2월엔 "(예능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과 뮤지컬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소회를 남겼다. 고인의 유작 '귀신경찰'은 내년 1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파란만장한 여배우의 삶을 살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도 드러났다. 고인은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러면서 "마당이 있는 집에서 글을 쓰고 싶다"며 소박한 꿈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인은 눈을 감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한 회사와의 갈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년 일기에서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고 털어놨다. 이 시기는 고인과 아들 정명호 씨가 식품 업체 나팔꽃F&B와 횡령·사기 혐의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던 때다.
이에 대해 고인은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저 아시죠?" "나더러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 "연예인이라 제대로 싸울 수 없다" 등 연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인의 딸 정 모씨는 "겉보기와 달리 엄마가 기사, 댓글에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한편 유가족은 고인이 말년에 겪은 고통을 옆에서 지켜본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는 이날 오후 경기 용인에서 열렸다.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