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꽃의 비밀’ 外

1 month ago 7
《인생엔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른다. 시원스레 웃는 날이 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시간도 피할 수 없다. 삶은 그렇게 여러 색깔로 채워진다. 웃음과 아픔으로 대비되는 연극과 뮤지컬을 살펴본다.》

연극 ‘꽃의 비밀’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의 향연

연극 ‘꽃의 비밀’에서 모니카(안소희·가운데)에게 온 전화에 귀 기울이는 자스민(이엘·왼쪽)과 소피아(황정민·오른쪽). 장차·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꽃의 비밀’에서 모니카(안소희·가운데)에게 온 전화에 귀 기울이는 자스민(이엘·왼쪽)과 소피아(황정민·오른쪽). 장차·파크컴퍼니 제공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마냥 깔깔 웃고 싶은가.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은가. 이런 이들에게 딱 맞는 작품이다.

연극 ‘꽃의 비밀’의 자스민(조연진), 모니카(공승연) 소피아(정영주·왼쪽부터). 장차·파크컴퍼니 제공

연극 ‘꽃의 비밀’의 자스민(조연진), 모니카(공승연) 소피아(정영주·왼쪽부터). 장차·파크컴퍼니 제공
이탈리아 북서부의 작은 시골 마을 빌라페로사. 남편들은 축구 경기를 보러 떠나고 여자들은 맏언니 격인 소피아 집에 모여 즐기려 한다. 늘 술에 취해 고래고래 노래 부르는 자스민,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해 스타 배우를 꿈꿨던 모니카, 공대를 나와 기계 다루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지나. 이들은 수다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했건만 지나의 폭탄 선언에 얼어붙는다. 혼란스러워하던 네 여자는 거액의 보험금을 받기 위해 하루 동안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해 연기하기로 한다. 한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자꾸 튀어나오는데….

장진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2015년 초연돼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창작 연극이지만 배경을 이탈리아로 한 건 해외 진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 실제 작품은 일본과 중국에 수출됐다. 무대에서 특히 강한 장진의 코미디가 활짝 피어나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예측 불허의 갖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독특한(?) 방법은 점점 더 속도를 높이며 관객들을 웃음으로 몰아간다. 집안일에 관심 없고 자주 상처 주는 남편들로 인해 속을 끓이고 고된 농사로 지친 서로를 보듬어주는 네 여자의 모습은 온기를 자아낸다.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는 단단한 무대를 선사한다. 소피아 역은 박선옥 황정민 정영주가, 자스민 역은 장영남 이엘 조연진이 맡았다. 모니카는 이연희 안소희 공승연이, 지나는 김슬기 박지예가 연기한다. 보험공단 의사 카를로 역에는 조재윤 김대령 최영준이, 간호사 산드라 역에는 정서우 전윤민이 발탁됐다.

박선옥은 관록 있게 중심을 잡아가는 소피아를 자연스럽게 그렸다. 이엘은 “코미디에 처음 도전하는 ‘코알못’이라 떨린다”고 했지만 그의 연기는 빼어난 코미디 연기자가 탄생했음을 확신하게 만든다. 엉뚱하면서도 종종 핵심을 찌르고, 흥에 겨워 온 몸으로 리듬을 타며 거침없이 망가지는 그는 웃음 버튼 그 자체다. 좌충우돌하면서도 대학 시절 기억을 더듬어가며 연기 지도를 해나가는 이연희의 색다른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박지예는 소심한 듯하지만 예고 없이 급발진하는 지나를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5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 벅스홀.
5만5000∼7만7000원.

뮤지컬 ‘베르테르’
아름답고 절절한 사랑의 고통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엄기준)는 롯데가 사는 발하임을 떠난다. CJ ENM 제공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베르테르(엄기준)는 롯데가 사는 발하임을 떠난다. CJ ENM 제공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로, 2000년 초연돼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서정적이면서도 차츰 긴장을 높여가는 이야기, 부드러우면서도 애틋한 음악, 수채화처럼 맑으면서도 세련된 무대 디자인으로 오랜 시간 사랑 받고 있다. 고선웅 작가가 극본을 쓰고 정민선 작곡가, 조광화 연출가가 함께 했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전미도·왼쪽)가 베르테르(양요섭)에게 책을 선물한다. CJ ENM 제공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롯데(전미도·왼쪽)가 베르테르(양요섭)에게 책을 선물한다. CJ ENM 제공
베르테르는 꽃과 나무가 가득한 마을 발하임에서 자석산에 대한 인형극을 하며 즐거워하는 롯데를 보고 첫눈에 이끌린다. 롯데는 시에 대해 조예 깊은 베르테르와 시를 이야기하며 가까워진다. 롯데를 사랑하게 된 베르테르는 이를 고백하려 하지만 롯데에게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너진다. 이에 발하임을 떠나지만 롯데를 잊을 수 없어 다시 돌아온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삶을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깊숙이 파고든다. 짧은 기쁨을 선사한 후 길고도 치명적인 고통을 준 사랑을 고우면서도 격정적인 시처럼 그렸다. 베르테르가 부르는 넘버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은 사랑의 애절함과 슬픔을 진하게 전한다.

원칙주의자로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지키는 알베르트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베르테르의 캐릭터를 더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사랑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정원사 카인즈를 베르테르가 변론하고 나서는 장면은 사랑에 대한 베르테르의 간절함을 보여준다. 끝내 비극을 향해가는 베르테르의 운명을 상징하는 해바라기꽃의 화사한 노란빛은 아픔을 고조시킨다. 후반부로 갈수록 객석 곳곳에는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다.

베르테르 역은 엄기준 양요섭 김민석이 맡았다. 일곱 번째로 베르테르를 연기하는 엄기준은 깊고 섬세한 표현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김민석은 순수한 열정을 지닌 베르테르를 호소력 있게 그린다. 롯데는 전미도 이지혜 류인아가 연기한다. 전미도는 해맑은 모습부터 혼란 속에 두려워하며 고뇌하는 모습까지 밀도있게 표현한다. 알베르트 역에는 박재윤 임정모가 발탁됐다. 펍 주인 오르카 역은 류수화 이영미가, 카인즈 역은 김이담 이봉준이 맡았다.

3월 16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7만∼16만 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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