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여한구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미 미국 측에 새 정부 첫 통상협상을 요청해뒀다며 최대한 빨리 협상을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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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사진=산업부) |
여 본부장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이른 시일 내에 미국 장관(무역대표부(USTR) 대표)과 만나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하려 한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 통상당국은 지난 4월 미국 트럼프 정부의 25% 상호관세 부과계획 발표를 계기로 통상협의를 시작했다. 7월9일로 예고된 상호관세 시행에 앞서 미국 측이 부과한 각종 관세 압력을 없애거나 줄여나가는 게 목표다. 지금까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협의가 이뤄진 만큼 상호 입장을 교환하는 수준이었으나 앞으로는 본격적인 의견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여 본부장은 “지금까진 민주적 정당성이나 맨데이트(mandate·권한)이 부여되지 않아 협상에 근본적 한계가 있었지만 이제부턴 최대한 협상을 가속할 것”이라며 “서두른다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의 국익 확보를 위해 선의를 갖고 바짝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이 길어지더라도 주요 결정은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되는 경우가 많다”며 “다른 국가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역시 18개국과 동시에 협상하는 만큼, 우리가 아무리 서두르더라도 당장 협상이 이뤄질 순 없다. 여 본부장은 “이번 주는 미·중 협상이 있었고 내주에는 다자간 정상회의(G7 정상회의)가 있다”며 “일단 협상을 요청해놓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부연했다.
미국 측이 상호관세 부과 시점을 더 유예하리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지만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여 본부장은 “오늘은 이런 정보가 나왔다가 내일은 180도 다른 정보가 나오면서 워싱턴D.C.의 싱크탱크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중요한 건 소식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윈-윈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대미 협상 총력전에 대비해 대미협상 대책반(TF)도 확대 개편한다. 현재 장성길 통상정책국장이 맡고 있는 실무 수석대표를 1급(실장급)으로 격상하고 이에 맞춰 통상은 물론 산업, 에너지를 망라한 조직을 꾸려 협상에 임한다. 그는 “협상의 연속성은 유지하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생각으로 새 정부의 새로운 시각을 담아 조만간 인사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적 결과 도출이라는 협상 목표도 제시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대한민국을 필요로 한다”며 “양국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 상호 호혜적 파트너십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당당히 협상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현 상황을 자유무역주의에 기반을 둔 지난 30년간의 글로벌 통상질서의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1993년 산업부에 합류해 통상 부문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한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2년여간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서 일하며 미국 내 변화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 황금기의 출발점인 30여년 전 공직을 시작해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지난 2년여간 그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변곡점을 체험하고 있다”며 “몇 년 사이에 없어질 성격이 아닌 거대한 흐름인 만큼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특단의 산업정책과 통상 정책이 시너지를 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여 본부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통상교섭본부 구성원 모두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세계가 경이로워하는 제조업과 첨단 기술, 매력적인 문화를 가진 G7(주요 7개국) 수준의 나라”라며 “이런 대한민국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수출입국·산업 강국을 만들어 온 여러분의 ‘상공부 DNA’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고 당부했다.